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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배우 이순재 '그대를 사랑합니다!'

조재현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연극배우)

지난 설날 전이었다.

 

이순재 선생님께서 주연한 강풀 만화 원작 '그대를 사랑합니다' 시사회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원작 만화도 봤고 연극으로 공연된 것도 봤고, 어쩜 솔직한 심정은 존경하는 이순재선생님 주연 영화이기에 꼭 가서 봐야겠다는 의무감도 없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원작과 상관없이 너무 쉽게 영화에 빠져버렸다. 여느 시사회도 이런 광경은 흔치 않았던 것 같은데 많은 관계자 및 영화인들이 보는 시사회에 이토록 많이 웃고 많이 흐느끼는 객석 반응은 없었던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마침 영화투자 배급사 대표를 만났다. 대표는 본인도 이 영화가 너무 좋아서 3번이나 시사회를 보고 또 웃고 울었음에도 흥행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솔직한 이야기를 했다. 이유인즉 제작비도 평균 영화 제작비의 반정도(10억)이기에 홍보 마케팅비를 여타 상업영화만큼 집행하기도 힘들고, 잘 나가는 젊은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무엇보다 노인영화라 알고 있어 주관객층이 10대·20대(젊은 관객)인 영화시장에서의 승부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사회장을 나오는데 이순재 선생님이 계신다. "영화 너무 좋아요. 선생님 앞으로 멜로 계속하셔야겠어요^^"라고 말하고 포옹을 했다.

 

영화 속의 이순재 선생님은 어떤 젊은 멜로배우 못지않게 사랑을 하고 있었고 그 사랑이 관객들로 하여금 70이 훨씬 넘은 나이를 모두가 잊고 그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전하는 배우로만 느껴졌던 것이다. 송재호 선생님도, 윤여정 선생님도, 김수미 선생님도….

 

영화는 개봉했고 첫 주 스코어는 전체 영화 6위로 출발했다. '아! 이게 현실이구나…' 싶었다. 둘째 주는 여지없이 10위로 밀려나 버렸고 이 상태라면 보통 그 다음 주엔 영화를 보고 싶어도 상영관이 없어 못보는 상황이 그려지게 된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3주째 4위로 올라서고 지금은 한국영화 1위를 기록하면서 관객은 이미 100만을 넘어섰다.

 

노인영화인줄 알았는데 사랑 영화, 그것도 유쾌하고 감동적인 사랑 영화라는 게 입소문을 타면서 이제는 평일 낮 시간에는 다른 영화에 비해 2배 가까운 관객이 몰려들고 있단다.

 

우리는 고령화시대에 살고 있고, 지금 나를 비롯한 중장년은 10년·20년 후에 노년 시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정보와 인터넷에 익숙하지 못하다. 하지만 40~50대 장년층은 그렇지 않다. 물론 여전히 힘든 직장생활과 한 가정의 가장 역할을 하기도 벅찬 것이 대한민국 대다수 가장들의 현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문화를 찾지 않으면 고령화시대를 살아가는 당사자들인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문화적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라는 영화의 관객추이를 보며 '그래도 이제는 희망이 보인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다시 한번 이 영화에 열연한 노배우들의 열정에 감사드린다.

 

무엇보다 출연진 중 가장 연세가 많은 이순재 선생님을 통해 느끼는 게 많다. 현존하는 배우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최고령 선배님임에도 불구하고 밤샘 촬영에도 전혀 피곤함을 내색하지 않으시고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과 후학들을 위한 대학 강의도 나가시고, 지역 주민을 위한 봉사 또한 게을리 하지 않으신다. 거기엔 당신이 타고난 튼튼한 체력만이 이유가 아니란 것을 우리 후배들은 다 안다. 지금도 암기력이 흐려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하여 미국 역대 대통령 이름과 우리 역대 왕 이름을 거꾸로 반복해서 암기하며 지속적으로 노력하신다고 한다. 이런 고령화시대에 생각과 마음이 젊은이보다 더 젊은 이순재라는 훌륭한 배우가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부모님께 전화 한통 해야겠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안보셨으면 꼭 가서 보시라고. 그리고 쑥스럽지만 지금까지 건강하셔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어머니·아버지 사랑합니다!' 라고 꼭 말씀 드려야겠다.

 

/ 조재현 (경기도문화의전당 이사장·연극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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