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후건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지난 3월11일 오후 2시경 일본 동북부지역에서 일어난 강도 9의 대지진은 바로 이웃인 우리에게도 커다란 충격이었다. 이어 이어진 원전폭발로 인해 원자로의 냉각장치가 정지돼 내부의 열이 이상 상승, 연료인 우라늄을 용해함으로써 저부(底部)가 녹아버리는 멜트다운(meltdown)과 방사능 누출 위험은 원전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이러한 사고는 안전에 있어서는 자타가 공인한다는 일본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강도 9와 같은 사상 초유의 지진에 과연 안전할 수 있는 원전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지만, 후쿠시마 원전 1호기가 폭발 뒤 미국의 기술 지원 제안을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이 거부했다는 것과 폭발 직후 프랑스의 붕산 제공 의사에 답변이 없던 일본 정부가 사고 발생 나흘이 지나서야 한국과 프랑스 정부에 붕산 지원을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 정부의 잘못된 판단과 자세 그리고 초기대응의 실패가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키웠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것을 리더십의 부재로도 설명할 수도 있지만 안전에 대한 준비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만심이 초기대응의 실패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일본 대지진 그리고 원전폭발에 대해 세계 각국 특히, 전통적으로 일본과 가깝고도 먼 나라인 한국에서도 도움의 행렬이 이어지는 것은 인류애적인 차원뿐만이 아니라 총 전기생산량의 약 40%를 원자력 발전에서 얻고 있어 남의 일만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지진으로 원자력 발전에 대한 비판과 부정적인 여론이 일고 있지만 석유고갈시대에 아직 그 어느 나라도 확실한 대체에너지를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원자력발전에 대한 수요는 잠시 주춤하겠지만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자력발전의 안전은 이번 지진에서 알 수 있듯이 원전을 가동하는 한 국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지난번 구소련의 체로노빌 사태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주변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국제적 이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국제적 협의와 협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필수적이다.
이것은 북한과 같은 한반도에서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단지 원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이다. 북한이 원전을 개발하려는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전력 이외에 원자력 발전에서 부산물로 얻을 수 있는 핵 물질을 무기화해 미국과의 대결에서 유리한 협상카드로 사용하려는 것과, 원자력 발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이 북한에 다량으로 매장돼 있어 만성적인 에너지 부족을 겪고 있는 북한이 이를 전력 발전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문제는 북한이 수세적인 입장에서 그리고 고립적인 상황에서 이를 추진하는데 있다. 북한이 한국과 그리고 국제사회와 지금처럼 협의나 협력 없이 원전 건설을 추진한다면 북한의 원전은 이번 일본 동북부에서 일어난 지진과 같은 자연 대재앙에 취약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지난 1985년의 체르노빌 사태를 초래한 인재의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또한 남과 북이 지금과 같은 냉전과 불안전하고 위험한 정전체제가 지속되고 악화된다면 핵을 무기화 단계로 가고 있는 북한과의 핵전쟁 또한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되는 위험천만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일본 동북부 대지진 이후 북한은 백두산 화산에 관한 공동조사를 한국 측에 제안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민간차원의 공동조사를 긍정적으로 검토한다고 발표했고 29일 첫 모임을 가졌다. 백두산 화산폭발에 대한 우려는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 그리고 주변국 모두의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 역시 마찬가지이며 정치적인 사항으로 미룰 수 없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6자회담이 재개돼야 하며, 6자회담이 열리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이 필수이다. 한국은 북한 원자력개발의 방관자가 아니라 중요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이번 백두산 화산에 관한 공동조사가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되어 남북정상이 서로 만나 허심탄회하게 논의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 박후건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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