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지(전북대 문헌정보학과 4학년)
건물과 건물 사이가 채 2m도 되지 않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대학교 앞 원룸촌. 필자가 사는 곳이다. 지난 1월, 새 집으로 이사한 이후 필자는 화분 4개를 들였다. 어릴 때부터 동·식물을 좋아하기도 했고, 예전에 죽어버린 식물 덕에 빈 화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전 원룸과는 달리 햇빛이 잘 드는 이 집에서 화분의 식물들은 오늘도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식물은 다육식물 두 종류와 관엽식물 두 종인데 이들에게서 요즘 여러 가지 것들을 배웠다.
화분을 구입하기 위해 처음으로 들른 화원에서 이렇게 물었었다. "어떤 것이 잘 안 죽어요?" "대부분 잘 안죽어요. 이쁜 놈으로 골라봐요." 아줌마는 화분의 식물들이 다 안 죽는다고 했지만 그 말을 믿기 어려워 물을 자주 주지 않아도 되는 선인장을 골라왔다. 집에 돌아와 분갈이를 한 후, 한 달에 한두 번 주기적으로 물을 주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는 관엽 식물을 들여왔고, 필자도 먹기 어려운 영양제를 사와 꽂아줬다. 그랬더니 화분들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다. 그 좁은 화분에서 저마다 햇빛을 받겠다고 키를 키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밑에서 햇빛을 받지 못하는 잎들은 시들기 시작했다. 안타깝지만 이런 잎들은 다시 흙으로 돌아갔고, 다른 줄기들의 양분이 됐다. 사람과 달리 경쟁 속에서도 이기주의가 아닌 서로를 생각하는 자세를 배웠다.
며칠 고향에 내려가느라 물을 주지 못했던 어느 날, 돌아와 보니 축 처진 잎이 가여워 미안한 마음에 물을 듬뿍 준 날이 있었다. 다음날 아침 화분의 잎들은 다시 활기차게 햇빛을 받으려 고개를 빳빳이 들고 있었다. 화원 아줌마 말은 맞았다. 모든 식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물이 적정하면 좋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살아가려 한다. 반장도 하고 재주가 많았던 한 동창은 나보다 체구가 작고 몸이 약했다.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은 나보다 많았다. 이처럼 '첫 인상만 보고 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격언을 몸으로 깨닫게 됐다.
이틀 전에는 3년간 몸담았던 신문사에 잠깐 들러 죽기 직전인 화분을 데려왔다. 꼭 살려보겠다는 마음에서였다. 물 한 번 주면 잘 살아갈 화분들인데도 그 시기를 놓쳐 식물들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물을 듬뿍 줬더니, 다행히 싹이 나 다시 큰 줄기를 키울 준비를 하고 있다.
화분도 '사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관심과 애정을 쏟을수록 화분과 사랑은 자란다. 하지만 화분에 물을 많이 주면 뿌리가 썩듯 과한 애정은 집착으로 변질돼 결국 사라지고 만다. 반대로 물을 주지 않았을 때 식물은 말라죽듯 사랑도 애정과 관심이 없어지면 말라 사라진다. 주기적인 물, 적당한 관심과 애정이 지속될 때 식물과 사랑은 유지될 수 있다.
약 33㎡(10평) 남짓한 원룸 창가에서 오늘도 화분의 식물들은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자격증 시험준비, 토익 준비로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 지친 내게 삶의 치열함과 애정을 상기시켰다. 이 원룸에 언제까지 살지는 미정이지만 이사 가는 그 날까지 이 아이들을 잘 키워볼 생각이다. 지금보다 더 자라면 화분이 아닌 대지에 옮길 예정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줬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삶에 지친 분들에게 화초 키우는 것을 추천한다. 죽을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설명서대로 물과 햇빛만 쐴 수 있게 해주면 된다. 식물이 보여주는 변화 하나 하나에 주목하다보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 양수지(전북대 문헌정보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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