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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전주국제영화제] 필리핀 독립영화의 거장 '키들랏 타히믹 감독'

"거대 자본서 벗어나 고유 문화 담아내야"…할리우드 영화공식 의존 말아야

 

필리핀 독립 영화의 거장으로 추앙받는 키들랏 타히믹 감독은 백만불짜리 미소를 지닌 괴짜다.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회고전에 초대된 그는 영화제 곳곳에서 대나무로 만든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돌발 영상을 찍는 자세를 취했다. 다소 우스꽝스런 그의 행동은 영화에 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이 대나무 카메라는 '아시아 눈'을 뜻해요. 대다수 젊은 감독들이 할리우드 공식에 입각한, 섹스와 폭력 등을 다룬 큰 영화만을 만들려고 하지만, 나는 아시아의 눈으로 본 우리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를 은유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아내, 아들, 손자까지 대동한 그는 전주영화제 방문이 처음. 그는 "필리핀 젊은 감독들로부터 JIFF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이 젊은 축제에 초대받을 수 있을 만큼 젊어서 다행"이라며 해맑게 웃었다. 그의 해사한 웃음은 보는 이로 하여금 따라 웃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이번 회고전에 데뷔작 <향기어린 악몽> (1997)부터 <투룸바> (1983), <무지개 가운데는 왜 노란색일까?> (1994), 가장 최근작 <과잉 개발의 기억> (2011)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단편이 초청됐다. '필리핀 문화 전사'인 그는 전주영화제를 위해 가족이 등장하는 야외 전시'패밀리 - 트리, 필름 - 매트릭스'도 기획했다. 그림, 비디오 설치 작품, 퍼포먼스가 어우러진 야외전은 할리우드 문화와 맞서 싸우는 변방국의 문화 갈등을 다룬 것. 그는 "앞으로 '제3차 세계 대전'은 문화전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영화에서도 필리핀 문화에 대한 깊은 관심은 지속된다. 필리핀 영화를 세계에 처음 알린 <향기어린 악몽> 도 외국 문화의 유혹을 다룬 영화. 그는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이 문화적인 식민지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필리핀의 엘리트들이 미국식 삶을 그대로 따라하는 걸 보면서, 우리 문화의 지혜를 놓치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문화가 매우 유혹적이긴 하지만, 우리 문화를 완전히 잊게 할 수도 있다고 본 거죠. 더군다나 내가 미국에서 발견한 것은 파괴적인 인간성이었습니다. 미국 문화에만 추종하는 것은 '문화적 악몽'에 가깝다고 봤습니다."

 

그의 영화가 20년이 넘어서도 다른 영화제에 초청받는 것은 이같은 영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 내내 거대 자본의 힘에 휘둘리기 보다는 우리 문화, 우리 이야기를 영화에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할리우드와 같은 큰 영화산업 속에서는 자신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투자자와 제작자의 말에 휘둘리기 때문이죠. 젊은 영화감독들이 이 판에서 갑자기 늙어 버리는 것은 잘못된 영화 공식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젊은 영화는 감독의 나이와 상관없이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실험정신에서 나옵니다. 그게 바탕이 될 때 관객들에게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안겨줄 수 있어요."

 

그는 유럽 독립영화 덕분에 영화에 눈을 뜨게 됐다. 올해 전주영화제에 3D 영화 <잊혀진 꿈의 동굴> 을 출품한 베르너 헤이 조그 감독을 비롯해 빈 벤더스·파스 빈더 감독에 매료됐던 그는 이들의 영화를 보면서 영감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영화 스타일에는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필리핀 문화를 필리핀 방식으로 전달하는 것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물론 이같은 철학 때문에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전주영화제에 단편으로 내놓은 <과잉 개발의 기억> 은 제작비가 없어 20년 넘게 마무리를 하지 못한 작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내가 영화를 포기한다면, 인간, 문화에 대한 시선의 기억이 말소되는 것"이라며 "아무리 힘들더라도 우리 모두가 영화 만드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진정으로 거장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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