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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여행] 남원 지리산 & 바래봉 철쭉제

철쭉꽃은 아직…아달말께 한폭의 수채화 절정 달할 듯

2일 지리산 바래봉철쭉제를 찾은 탐방객들이 바래봉 밑자락 정자에 모여 쉬고 있다. ([email protected])

아내가 남편에게 다정하게 물었다. "여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나랑 결혼할거야?"

 

묵묵부답인 남편을 채근하며 또 아내는 물었다. "나랑 다시 결혼 할거냐고? 응?"

 

남편은 방문을 열고 나가며 말했다.

 

"안 태어나, 안 태어나."

 

자신의 선택에 대한 늦은 후회일까. 운명이니 자신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을까. 5월 2일 아침. 길 떠날 채비를 하는 나에게 아내가 들려주는 우스갯소리.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바래봉 이정표. ([email protected])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 불 꺼진 재라도 다시 타오른다고 하지 않던가. 서둘러 가자. 이미 인연이 닿아 있기에 목적지는 남원 지리산으로 정했다. 둘레길 따라 걸어볼까. 놀부와 흥부가 살았다던 그곳으로 가볼까. 오랜만에 실상사를 둘러보는 것은 어떨까…. 철쭉이 한창이란다. 바래봉으로 향했다.

 

▲ 찬란히 불타는 꽃불을 찾아서

 

진홍물감 풀어놓은 한 폭의 수채화를 상상하며 시동을 걸었다. 전주에서 남원 운봉까지 가기 위해 완주 상관 나들목에서 진입, 지난해 개통된 전주~광양 고속도로 구간을 달렸다. 빠르다지만 재미없는 길, 이쯤에서 내려갈까. 임실 오수 나들목이 보였다. 남원 분기점까지 가서 88고속도로를 이용해도 되지만 길 가는 맛은 국도다. 1시간 10여분 달리니 운봉이다.

 

가왕 송흥록 생가. ([email protected])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지리산 바래봉철쭉제는 지난 4월 28일 시작해 5월 23일까지 25일간 운봉 허브밸리 내 철쭉 군락지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바래봉(1,165m)은 지리산 만복대-고리봉-세걸산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서북능선' 상의 봉우리. '바래'는 봉우리가 스님들의 밥그릇인 바리를 엎어 놓은 모양과 비슷하게 생긴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남원 허브밸리 파란색 풍차. ([email protected])

친절한 안내판을 끼고 운봉읍사무소 맞은 편 도로로 들어가면 춘향허브마을이다. 2분정도 더 운전하면 철쭉제 행사장이 반긴다. 주차장에는 관광버스와 자동차들이 제법 자리잡고 있었다.

 

계단을 오르니 허브밸리 상징물이 보이고 장터에는 천막들이 줄지어 있다. 왼편으로 서있는 파란색 풍차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올해 8월에는 이곳에서 허브축제도 열린다고 한다. 허브밸리 압화전시관을 들러 눈요기를 하고, 꽃잔치 진수성찬을 맛보러 슬슬 발걸음을 옮겼다. 시계꽃, 부처꽃, 백리향…. 팻말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바래봉을 향해 올라갔다.

 

철쭉제는 개막했지만 꽃봉오리만 뾰족뾰족. 바래봉 이정표가 보이는데도 꽃이 드물다. 어느 시인은 바래봉 철쭉을 '꽃불이야!'라고 표현했다는데, 기대가 지나쳤을까. 등산복 차림의 한 사람이 아직 안 피었으니 힘 빠진다며 걸음을 늦추자, 동료가 등산로는 비단길이라며 그래도 힘내자며 다독인다.

 

바래봉 철쭉은 해마다 4월말에서 5월 중순경까지 장관을 이루는데 올해는 눈ㆍ비가 잦아 밑자락만 간신히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는 상태란다. 너무 서둘러 왔다. 날씨 변덕에 개화 시기가 늦어진 것은 하늘의 일이라지만, 탐방객들이 꽃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축제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사람의 일 아니던가.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히고,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의 축이 부러지며, 여러 사람의 입은 무쇠도 녹이고, 여러 사람의 비방이 쌓이면 뼈도 녹인다. -「사기열전」' 전국 제일의 철쭉제라는 명성도 흠이 쌓이면 탐방객이 외면하지 않겠는가.

 

넉넉하게 품어주는 지리산은 아직 초록빛이다. 때가 이르니 이쯤에서 멈춰야 했다. 8부 능선(해발 900m)은 17일 이후, 정상(해발 1000m)은 25일 이후에나 꽃을 피울 전망이라고 한다. 5월 말쯤 더디 가야 찬란한 꽃불들의 절정을 볼 수 있겠다.

 

▲ 발길 돌리기는 아쉬워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 지리산 둘레길 제2코스인 운봉~인월 구간에 있는 마을이다. 황산대첩비지 뿐만 아니라 동편제의 시조인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의 생가도 있다.

 

바래봉 철쭉제 행사장을 나와 운봉읍사무소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돌아 차로 5분이면 비전마을이다. 멀리서 둘레길을 걷는 탐방객들이 보였다. 다리를 건너며 보니 큼직한 나무들이 대첩비지를 둥그렇게 감싸고 있다. 황산대첩비는 1577년(선조 10년) 건립되었다가 1943년 일제가 민족혼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훼손했고, 1957년 복원됐다고 한다. 부끄러운 역사는 감추고 싶었을 터다.

 

가왕 송흥록과 국창 박초월의 생가는 대첩비지에서 100여m 떨어져 있는데 2000년 7월에 복원됐다고 한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판소리를 들으며 대각선으로 이웃한 초가집 두 채를 구경하고 차를 탔다.

 

비전마을에서 인월 방향으로 가다보면 천 옆에 꽤나 넓직한 바위가 넙죽 누워있다. 피바위다. 곳곳에 붉은 기운이 감도는 바위를 소나무 두 그루가 지키고 있다. 피바위는 왜구들이 흘린 피가 바위를 물들여 지금까지 붉다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이 지역에는 고려 말 이성계의 황산대첩에 얽힌 지명이 많다. 날이 어두워지자 달을 끌어올려 놓고 전투를 했다고 해서 '인월(引月)', 바람을 몰고 다니며 싸웠다고 하여 불리우는 '인풍(引風)'….

 

▲ 대몰저수지의 소나무들

 

결국 지리산 밑자락만 맴돌다 국도 17호선에 올랐다. 임실 오수 나들목을 앞두고 대몰저수지 옆에 이리저리 휜 소나무들이 스쳐간다. 돌아보니 저 소나무들 처럼 휘어지게 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부러질지언정 곧게 살지도 못했다. 임실 오수 대정리 대몰저수지. 알고보니 이곳이 꽤 유명한 곳이다. 전국적으로 손가락에 꼽히는 가시연꽃 군락지다. 가시연꽃은 산림청이 보존 1순위 식물자원으로 8월 전후 자주색 꽃잎을 열었다가 밤이면 닫는다고 한다. 임실군이 '가시연꽃 생태공원'으로 가꾸고 있다니 들러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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