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건축가)
쿠바에서 태어난 이탈리아의 작가 이탈로칼비노(1923~1985)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a invisibili)'이라는 책이 있다. 1972년에 초간된 이 소설이 나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관념을 크게 전환하도록 만든 책이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 중에 들렀던 도시들을 쿠빌라이칸에게 묘사하며 들려주는 내용으로 된 이 작은 책은 그 소제목의 구성부터 예사롭지 않다. 전체 아홉 개의 장으로 나누어 첫째 장과 마지막 장에 각각 열 개의 도시, 나머지 일곱 장에는 각기 다섯 개의 도시를 넣어 전체 쉰 다섯의 도시를 설명하는 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소제목에는 도시, 기억, 욕망, 싸인, 이름, 망자, 하늘 같은 단어들을 반복시키면서 숫자들을 거꾸로 붙여, 목록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흥미를 유발시킨다.
책의 곳곳에는 우리로 하여금 도시에 대한 상상과 성찰로 이끄는 내용이 즐비하다. 인상 깊은 몇 가지 문장들을 발췌하면, '자이라'라는 도시를 설명하면서 이 도시에 있는 높은 탑이나 형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라고 하며, "도시는 이런 것들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도시 공간의 크기와 과거 사건들 사이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단호히 얘기한다. 즉 도시의 가치가 위대한 건축물 몇몇에 있는 게 아니라 "거리의 모퉁이에, 창살에, 계단난간에, 피뢰침 안테나에, 깃대에 쓰여 있으며 그 자체로 긁히고 잘리고 조각나고 소용돌이 치는 모든 단편들에 담겨 있습니다."라고 황제에게 강조하며 설명한다. 도시의 인상을 이야기 할 때 거들떠 보지 않는 우리의 작은 일상에, 실은 도시의 가장 큰 진정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도시를 이해하는 방법은 대개 그 도시에 있는 상징적 시설물들을 통해 얻는 인상인데, 사실 이것들은 그 도시에 거주하는 도시민의 삶과는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실제로 나는 내가 사는 서울의 남산타워에 한번도 올라가 본 적이 없으며, 서울시가 자랑하는 서울 숲이나 한강 르네상스 시설을 이용한 적도 없고 시내에 즐비한 고층빌딩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을 안내하는 책자마다 소개되어 있는 그러한 풍경은 이탈로칼비노의 말을 빌리면 순전히 이미지며 환영일 뿐이다.
도시는 건축물들의 집합으로 구성된다는 말이 맞기는 하지만 도시의 본질은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 도시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구성된 사회다. 그래서 누구나 거주할 수 있어야 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도시계획의 사명이라면, 그 공간은 건축물 내부에 있는 게 아니라 바깥에 있다. 건물의 내부는 개인이나 일부 집단을 위한 시설일 뿐이며, 도시민이나 방문자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인 도로나 광장·공원 등이 도시에서 더욱 요긴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시에서 중요한 것은 채워져 있는 부분이 아니라 비워져 있는 부분이다. 다만 그 비어있는 부분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잘 인식되지 않지만, 우리의 도시적 삶과 공동체는 그런 공간에서 결정적으로 형성된다. 이를 두고 이탈로칼비노는 '보이지 않는 도시들' 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도시를 만들거나 설계할 때 중요한 것은 비움의 공간을 설정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현대의 도시계획도에서는 비어져 있는 공간은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모든 부분은 현란한 색깔로 채워져야 하고 이들을 연결하는 도로는 일정한 폭의 붉은 선이어야 하며 이를 표현한 그림은 20년 혹은 50년 후 목표연도의 환상적 미래상을 보여주어야 했다. 그것을 도시의 청사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나는 그런 목표가 실제로 완성되어진 도시에 대해 들은 적이 없다. 다 허황된 가정이었고 거짓이기 일쑤였다. 미래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일이며 많은 부분을 비워 남겨 놓는 일이 더 솔직한 계획이었을 게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현재적 삶이며, 그 삶은 바로 우리 동네 골목 안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풍경이어서, 이 풍경을 만드는 일이 도시의 목적이라는 것을 이탈로칼비노는 누누이 이야기하며 우리의 잘못된 도시관을 바로잡을 것을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 더운 여름,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우리의 행복을 보장하는 도시를 발견하며 우리 삶을 사유하는 즐거움을 누리실 것이다.
/ 승효상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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