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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마냥 괴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지…" 고달픈 달동네, 절절한 '희망가'

극단 사람세상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극단 사람세상이 세번째로 무대화한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에 나오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회적 열패자, 속칭 '루저'들이다. 안쓰럽고 딱한 삶이건만,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면 희극적이다.

 

연극은 세 인물의 숨겨놓은 사연을 천천히 그러나 코믹하게 풀어낸다. 압구정동이 보이는 서울 달동네 옥수동에 사는 김만수(편성후 역)는 사기 도박으로 승승장구하다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처지. 감옥에 10년 이상 썩고 나왔더니 아내는 새 삶을 찾아 떠났고 버려진 아이는 백혈병으로 이 세상을 등졌다.

 

오토바이 수리공으로 알뜰살뜰 모은 돈을 사기 도박으로 날린 박문호(백호영 역)는 도박판을 전전하며 '결정적 한 방'만을 노린다. 만수와 시시건건 시비가 붙던 문호는 만수의 전직 이력을 알게 된 후부터 만수에게 '독심 화투술'을 전수해달라며 생떼를 부린다. 자신을 겁탈하려 든 새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를 빼내오기 위해 돈을 버는 조미령(정해선 역)은 밤무대 가수의 삶이 버겁기만 하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 손톱 밑에 든 가시 때문에 아파 죽겠다며 '킹 오브 만신창이' 자리를 놓고 대결을 벌인다.

 

하지만 연극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각자 상처를 안고 사는 만신창이지만 서로에게 손을 내밀 줄 아는, 온정을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 이것은 꿈과 희망을 잃은 이들에게 꾸역꾸역 살아갈 힘을 준다.

 

후줄근한 노년의 열패감을 능청맞게 연기한 편성후씨와 청춘을 다 바쳐 열망한 도박이 허망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내면 심리를 잘 풀어낸 백호영씨는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도 하지만, 가슴을 먹먹하게도 했다. 막무가내 문호를 잘 다독여 진실한 사랑으로 이끄는 정해선씨의 연기도 주목할 만 했다. 다만 '늙은이' 만수의 연기에는 좀 더 노련함이, 뻔한 캐릭터에 빠지지 않기 위한 미령의 개성 넘치는 연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희극작가 김태수의 원작에 충실했다 하더라도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기 위한 가족 신화(?)에 안주하는 결말로 이어진 것도 조금은 진부하다.

 

"한강아! 산다는 게 마냥 괴롭고 힘든 것만은 아니지. 그래서 가슴 속에 저마다 한 가지씩 희망이란 걸 품어보는게 아니겠어, 그런데 니미랄 것, 왜 이렇게 눈물이 자꾸 난다냐? 왜 오늘 같은날 지랄맞게 여편네 생각이 자꾸 나지…."

 

만수의 마지막 대사처럼 어떤 비극이 기다리고 있다 하더라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는 다소 뻔한 이야기를 펀(fun)하게 풀었다.

 

전주에서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군산 극단의 좋은 작품을 고급화된 소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젊은 연출가전'을 기획한 우진문화재단에도 박수를 보낸다.

 

△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 = 15일까지 전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 평일 오후 7시30분, 토요일 오후 3·7시, 일요일 오후 4시. 문의 063)272-7223. woojin.or.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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