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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청자음각 추규무늬 장구 - 고려 도공들의 예술혼 담긴 일체형 장구

길이 48.2cm 현재와 유사한 모습

 

장구는 모래시계 모양의 나무통 양면에 가죽을 대서 만든 타악기다. 장구는 사람들을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하는 데 그 어떤 악기보다 강력한 힘과 인상을 심어준다.

 

특히 현재와 같이 나무통에 가죽을 댄 장구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언제나 장구 대용품을 만들어 장구 소리를 냈다. 고려청자가 유행하던 시절에는 우아한 청자로 장구통을 만들어 멋을 더했고, 조선시대의 풍류방에서는 대나무통으로 만든 죽장고를 두고 노래와 줄풍류를 반주했다.

 

홍명희 소설 '임꺽정'에 "강아지가 아니고 박아지라도 좋다. 박아지는 개울물에 엎어 놓고 박장구 치지 걱정이냐"라는 대목을 읽다 보면, 서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박장구를 두드리며 즐기는 일도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것도 저것도 없으면 '입장구'라도 쳤던 것이니 이만하면 장구가 거의 생활필수품처럼 존재했던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 기록에서 장구가 공식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려시대부터다. 고려 문종 30년인 1076년에 제정한 대악관현방 소속 악사들의 월급 항목에 보면 장구 연주자 두 명이 제2등급의 악사로 소속되었고, 『고려사』 「악지」에는 아악을 제외한 당악과 향악 및 궁중정재 반주를 위한 악기 편성에 모두 장구가 사용되었다.

 

1939년 사적 제69호로 지정하고 관리되어 온 부안 유천리 도요지는 700년 전 고려인의 혼을 담아 당대 최고의 기술로 만든 고려상감청자의 보고다. 이 고려청자 산실에서 출토된 청자음각 추규무늬 장구는 당대 도공과 예인의 합일치를 보여주는 유물이다. 현재 이화여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장구는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고, 대담하면서도 웅장한 고려시대 장구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악학궤범』에는 '장구를 만드는 재료에 대해 장구의 허리는 나무에다 칠포를 붙인 것이 제일 좋고, 사기가 그 다음이며, 질그릇은 좋지 않다'라는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도자기 장구 또한 실제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700여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이 청자장구는 길이가 48.2cm로 현재의 장구와 유사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장구는 유물의 허리격에 해당되는 조롱목을 연결하여 쓰는 조립식이 아닌 일체형의 장구란 점에서도 당대 도공들의 치열한 예혼을 만날 수 있다. 순수하게 흙은 한 점의 장구를 탄생시킨 것이다. 또 장구에는 추규당총, 연판, 당초, 뇌문, 종선문이 조각되어 있어 화려함마저 안겨준다. 또한 받침 흔적까지 있어 장구를 고정시켜 연주한 것으로 추측된다. 거대한 크기를 생산했던 도공을 생각하면 머리가 절로 숙여진다.

 

이 유물은 일제강점기에 정읍에 살던 일본인 후까다가 유천리 가마터에서 도굴하여 갖고 있던 유물로 1958년 이화여대 박물관이 구입한 것이다. 현재에는 나무로 된 장구가 사용되고 있지만 도자기 장구가 주는 우아함과 섬세한 소리로 빚어내는 국악무대도 열리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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