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수철 소설가
대체적으로 남자는 왜 여자의 유방이 더 큰 쪽을 선호하는가. 얼마 전에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답변을 들었다. 애초에 인간 여성의 유방이 다른 영장류의 경우보다 더 발달한 것은, 인류의 조상이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수컷을 유혹하던 암컷 엉덩이의 역할을 유방이 대신하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그러나 남자가 풍만한 가슴을 가진 여자를 더 좋아하는 이유는 오랫동안 미스터리였다. 가슴이 작은 여자도 자기 아이가 먹을 모유는 가슴이 큰 여자들만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던 중 1990년 말에 한 과학자가, 풍만한 무거운 가슴이 작은 가슴에 비해 나이가 들면서 훨씬 눈에 띄게 처진다는 사실을 관찰해냈다. 작은 가슴은 나이가 들어도 모양이 크게 변하지 않는데, 이 때문에 남자는 여자가 작은 가슴보다는 풍만한 가슴을 가졌을 때 그 여자가 젊은지 늙었는지를 판별하기가 훨씬 쉽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자가 젊을수록 남자의 씨를 퍼트릴 수 있는 번식 능력이 더 월등하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남자는 자연스레 가슴이 풍만한 여자에게 더 매력을 느끼게 된다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발상은 최근에 새로이 부상하고 있는 진화심리학의 '사바나 원칙'이라는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사바나 원칙에 따르면, 인류는 수십만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 왔는데. 1 만 년 전에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렵채집을 하며 살아가던 시기부터 진화가 멈추었다고 한다. 그 후로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도 급속하게 변화하는 것을 진화가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두뇌는 석기시대의 두뇌라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여전히 석기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탓에, 우리는 사실상 과학적 발명품들은 물론이고 경찰이나 법정이라는 것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 채,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남는 것과 번식에 성공하여 자기 유전자를 퍼뜨리려는 심리적 기제를 여전히 지닌 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게 진화심리학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그리하여 진화심리학은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 몰려드는 이유, 남자들이 여자들의 긴 머리카락, 금발, 가는 허리를 선호하는 이유, 남자든 여자든 상대방의 얼굴에서 좌우동형의 이목구비를 선호하는 이유, 남자들이 포르노그래피에 열중하는 데 반해 여자들은 포르노그래피를 피하는 이유, 심지어 남성 성기에서 귀두가 지금처럼 특별한 모양을 취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명쾌하게 '진화론적'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그 중 흥미로운 것들 중에 하나는 중년 남자들이 겪는 중년의 위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인데, 중년의 위기는 남자들이 중년에 이르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아내가 중년이 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아내가 폐경기에 접어들 때 남편들은 더 젊고 번식 능력이 있는 여자를 찾으려는 새로운 욕구에 빠지게 되면서 안팎으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남자의 두뇌는 실리콘이 들어찬 가슴이나 염색한 금발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데, 왜냐하면 그것들은 1만 년 전의 환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이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진화심리학자들이 내세우고 있는 명분, 즉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인간 갈등의 새로운 측면들을 찾아내려는 시도에 대해 긍정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모든 감정과 행동을 짝짓기에 연결 지어 파악함으로써 인간을 동물의 차원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동안 당연하거나 자명하게 여겨왔던 것들에 대해 과감히 질문을 던짐으로써 깊이 감추어진 인간의 본성을 밝혀보는 일은 무엇보다 생산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근래 들어 이 분야의 책들이 거의 며칠 간격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으니, 우리는 진화심리학의 성실하고 부단한 '진화'에 대해 믿음을 가져도 좋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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