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한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요즘 언론매체를 통해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를 자주 접하게 된다. 현 시국을 전망하거나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할 때 사용하는 듯하다. 그들이 말하고 있는 시대정신의 내용은 사회통합이다.
정치적 분열의 역사는 오래된다. 의회민주주의의 태동기에도 당쟁은 있었다. 최초의 근대정당으로 불리는 영국의 토리당과 휘그당 간의 싸움은 걸리버여행기에서도 풍자될 정도로 심각하였다.
비슷한 시기 대륙의 끝 조선에서도 붕당정치는 있었다. 서인과 동인 간의 대립, 그리고 동인에서 갈린 남인과 북인 간의 대립, 그리고 서인에서 갈린 노론과 소론 간의 대립이 비판되었다. 이는 조선인에게 자율적 조정 능력이 없어 식민지배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일제에 의해 확대 재생산되기도 했다.
오늘날 다른 민주국가들에 비해 정당 간 차이가 적다는 미국에서조차 민주당과 공화당 간 가치 차이는 계속 증대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동서고금을 털어 당파적 정쟁이 전혀 없는 정당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내부의 갈등은 외부와의 경쟁에서 패배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적을 앞에 두고 분열되는 적전분열(敵前分裂)과 반대되는 현상은 오월동주(吳越同舟)이다. 서로 원수관계인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이 같은 배를 탔다가 풍랑을 만나면 왼손과 오른손처럼 서로 협력하여 풍랑을 극복한다는 오월동주는 오나라와 월나라 간의 적개심이 풍랑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약해야 가능하다.
한국의 경우 국내 분열의 정도가 외국과의 갈등보다 더 클 때가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북한, 미국, 중국 등 남한 외부의 문제로 남남갈등이 전개되는 것은 내부 경쟁세력에 대한 불신이 외부 세력에 대한 불신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내부 분열이 심각한 이유는 그 분열이 패거리적이기 때문이다. 패거리적 분열에서는 무엇을 지지하고 비판하느냐는 측면보다 누구를 옹호하고 비난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보수적이거나 진보적인 언론매체의 청탁으로 원고를 기고하게 되면 글의 내용보다 기고 매체로 판단될 때가 많았다. 주장의 논리성보다 가담한 패거리가 더 중요한 세상이다.
물론 색깔이 뚜렷한 언론들은 원고를 청탁하고도 작성된 글 내용이 자신의 편집방향과 맞지 않다고 게재하지 않았던 경우도 있다. 언론과 SNS는 상대와의 소통보다 그들만의 리그라는 성격이 강하다.
사회가 분열되었다고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FTA와 같은 외국과의 협상에서 국내 협상파의 대척점에 있는 국내 강경파의 존재 때문에 외국이 더 양보하게 되어, 결과적으로 내부 분열이 외부와의 협상에 유리할 때도 있다.
민주주의, 특히 정당민주주의는 분열을 전제로 한다. 민주주의가 발달할수록 의회나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 수준은 낮아진다. 그런 맥락에서 정치 불신과 분열은 민주주의의 필요악이다.
따라서 분열 자체를 없애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렇지만 과도한 불신과 분열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기도 한다. 따라서 합리적 분열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이치를 음과 양으로 설명하는 음양설에서 음과 양은 대립된다는 의미보다 상호보완적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음양설은 순음 또는 순양으로 구성된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분열은 합리적인 합의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극단적 입장보다 중도적 입장이 두터워야 한다.
중도 비중의 증대는 정치엘리트 차원에서 모색될 수 있다. 이편저편 왔다갔다하는 행태는 중도가 아니다. 그러한 행태는 한쪽으로 힘을 몰아주어 단기적으로 정치적 통합과 안정에 기여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론 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하여 오히려 사회통합에 부정적이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더라도 남의 소신도 인정하면 통합이 될 수 있다. 또 합의된 게임규칙을 지키는 것도 통합에 필수적이다.
통합을 정치 슬로건으로 내세울 것이 아니라, 다원주의와 법치주의를 바로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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