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희 한일장신대신문 편집장
며칠 전, 볼 일 때문에 서울에서 이틀을 묵게 되었다. 지하철을 이용하고 걷는 내내 일행과 나는 서울사람들은 뭐가 그리 바쁘냐는 질문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전주로 돌아와 원룸으로 향하는 길, 어두교에서 보이는 학교의 고적하고 넉넉한 모습을 보고서야 평온을 되찾았다.
요즈음 우리는 꼭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야한다는 의무감이나 해낸 일에 대한 인정 등 성과주의 내지는 결과주의를 추구하는 모습을 누구에게서나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세태속에서 우리는 늘 바쁘고 일하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하다. 물론 그것은 우리가 원해서 해내는 일들이 아니다. 사회 혹은 속한 집단의 요구에 맞추어 내야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조급함을 삶까지 가지고 들어왔다. 그래서 무엇이든 바쁘게, 빠르게 해내야한다고 생각하고 여유를 잃게 되었다.
사실 나는 신학을 공부하므로 내 세대가 걱정하는 취업, 자격증, 어학연수와 같은 스펙이 아닌 세상말로 '사색과 성찰'을 해야 나를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도 학생인지라 성적이나 내 욕심에 채워져야만 하는 것들 때문에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빠르게 걷는다. 그럴 때면 나는 늘 탈진상태가 되어버린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즐거움이나 소중함과 같은 의미들은 퇴색되어 버릴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느리게 걷는다. 그것을 여유라고 생각하는데 내 경우에는 사진을 찍거나 풍경을 보며 느리게 걷고 자유롭게 여행을 해야 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나면 다시 내 모습을 되찾고 살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이것은 꼭 거창한 여유가 아니어도 된다. 느리게 걸으며 주위를 보면, 매일같이 보던 것이 새롭게 다가온다. 바짝 말라서 고여 버려 썩을까 봐 걱정될 정도였던 하천이 비 온 뒤 얼마나 힘차게 흐르는가를 보기도하고 비 온 뒤 큼지막해진 대추알을 보며 침을 삼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통해 내 삶에 직면해 있던 문제들에 대한 답을 얻고 또 나를 다시 성찰해 본다. 그렇게 내가 관심 갖지 못했던 살아있는 것들에 대해 다시 여유가 생기고 그것들을 통해 내 삶을 재조명해볼 기회를 갖게 된다. 늘 보아오던 것들을 느리게 걸으며 다시 바라보는 것이란 늘 다른 의미를 준다.
나는 전북이, 전주가 아름다운 것은 우리내 고장이 참 느리게 걷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뒤쳐졌다고, 성과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느림으로 인해 지금의 모습을 간직하고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소중한 것이 아닐까. 또한 그 옛날 뒷짐을 지고 느리게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며 이 길을 걸었던 양반들의 정취를 느끼고자 이곳에 찾아오는 이들에게도 그 느림이라는 것이 중요한 의미일 것이다.
이제 나는 여러분과 다시 빨라지려하는 걸음을 늦추고 돌아보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시선을 옮기며 그를 통해 진정한 내 모습을 다시 발견하며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사는 즐거움'을 배우려한다.
※ 한 편집장은 2010년부터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으며 현재 신학부 3학년에 재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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