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피로사회'… 권오표 시인 서평
지난달 나라에서 베풀어주는 종합건강검진을 받았다.
"스트레스성 만성 위염입니다."
의사는 그 나이에 당연한 일 아니겠느냐는 말투였다. 더 나쁘게 진행되지 않았다는 게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는 정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검진까지 해주겠단다.
이 대목에서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는 몇 평인가. 연봉은. 아내의 명품백은 몇 개인가. 올해 가족들이 해외여행은 다녀오셨는가."
이 물음에 고개 숙인 당신은 '도덕적으로 완벽한', 대한민국에서 지금까지 '똥침만 맞으며' 살아온 거다. 그렇다고 아직 절망하지는 마시라. 실패는 귀한 자산이며 기회는 얼마든지 온다고 친절히 위로해주니까. (과연 이 말을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른지 모르겠지만.)
이를 위해 우선 당신이 지불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증후군' 중 마음대로 골라보시라.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고 시작하는 '피로사회'(문학과 지성사)는 저자 한병철 씨가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오늘의 서구사회를 분석한 철학서이자 동시에 문화비평서다. 여기서 저자는 21세기 사회를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한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규율사회'는 금지의 부정성을 통해 '~해서는 안 된다'가 지배적인 반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음' 이라는 긍정의 도식을 통해 주인 스스로 노동하고 노예가 되는 노동수용소이며, 이 노동수용소의 특징은 한 사람이 동시에 포로이자 감독관이며 희생자이자 가해자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는 것이다.
올해 초 정부의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시간당 4860원)에 대해 아파트 경비원들이 정부에 자신들을 예외로 인정해 달라고 탄원을 냈다. 정부안대로 임금이 인상될 경우 CCTV로 대체 돼 결국 일자리을 잃느니 현재의 월 90여 만원 처우에라도 만족하겠다는 결연한 각오였다. (이 어르신들은 365일 내내 휴일도 없이 24시간 맞교대로 근무한다.) 고맙게도 누구에게나 기회는 골고루 주어지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국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현재 21세기 한국사회 역시 '성과제일주의'에 매몰돼 있고 이에 따른 폐해와 심리적 질환에 심각하게 노출돼 있다. 어쩌면 그 정도는 서구를 넘어섰는지도 모른다. OECD 국가 중 최장의 노동시간과 최고의 자살률은 지금 우리의 현주소이다. 1등만이 살아남을 수 있고 금메달만이 기억되며 명품 앞에 줄을 서는 우리의 삶은 '스스로를 가해자와 피해자가 되어 착취하고' 있다.
저자는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고 성과사회는 우울증과 낙오자를 만든다' 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성과사회의 과잉활동과 과잉자극에 맞서 그 대안으로 '사색적인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만이 이 병폐를 치유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여기서 다시 당신에게 묻는다. 지금 행복하신가.
△ 권오표 시인은 1992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해 시집'여수일지'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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