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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가 아프다

▲ 객원논설위원

필자의 지인(知人)가운데 전주시내 대단위 아파트단지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을 지낸 사람이 있었다. 공직에서 퇴직한 그는 10여명으로 구성된 대표회의를 이끌면서 꽤 의욕적으로 일했다. 그러나 1년이 채 못되어 사직하고 말았다. 회의가 열릴때마다 벌어지는 대표끼리의 갈등과 이견, 폭언 폭력사태에 환멸을 느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런 사림이 어떻게 대표를 할 수 있을까 자격마저 의심스러운 사람이 대표랍시고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회의장을 난장판으로 만드는데는 더 이상 참고 견디기 힘들더라는 것이다.

 

결국 일부 먹통대표들과 멱살잡이까지 간 후 회장직에서 물러난 그가 남긴 말, "아파트대표자회의 회장? 그거 아무나 하는 자리가 아니더라"다 . 정말 그랬을 것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동 대표를 해 봐서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그런 아파트가 어디 그곳 뿐이 겠는가. 집 값 떨어 질까봐 소문 안내서 그렇지 대표자회의 시끄럽기는 어는 아파트단지나 대개 비슷할 것이라는게 필자의 생각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다. 산업화 이후 70년대부터 전국 곳곳에 아파트단지들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다. 서울 부산등 대도시는 물론 지방보디, 읍면단위 농어촌 지역까지 폭발적인 증가세다. 가까운 도시 근교 산에라도 올라가 보라. 시야를 가득 메우는 것은 어김없이 아파트군이다. 성냥갑처럼 빽빽히 들어선 콘크리트 철옹성이 위압적인 자세로 버티고 있다.

 

경기 불황이네, 하우스 푸어네, 아파트 정책에 비판도 많지만 건설경기가 조금만 되살아나도 아파트 건축 붐은 되살아 날게 뻔하다. 전국 1588만 가구중 664만가구(2005년 기준)가 아파트라는 통계만 봐도 쉽게 알수 있다. 그래서 프랑스의 한 지질학자가 그의 책 제목으로 썼다는 '아파트 공화국'이란 말은 우리나라에서 역시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그는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생활 공간의 쾌적함이나 편리함 대신 가격으로 평가되는 상품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지만 사실이다.

 

전국민의 40% 이상이 아파트에 살면서 아파트 값에 일희일비 한다. 그런데도 대대수 아파트 주민들은 내집에만 관심을 두지 내 아파트 관리가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어둡다. 관리비는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관리업체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지, 심지어 내가 사는 동(棟)대표가 누구인지 조차 모른다. 내 생활에 직결되는 중요한 사항인데도 누군가 알아서 해 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넘어 가곤 한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다가 생각지도 않은 피해가 내게 되돌아 올수 있는데도 말이다.

 

단지마다 동 대표들로 구성된 입주자대표회는 아파트 살림살이에 대한 최고의결기구다. 단지내 전기 가스 상하수도 냉난방 설비 엘리베이터 주차장등을 유지 관리하는 기준을 정하는 기구가 바로 이것이다.

 

전국에서 입주자대표회의를 거치는 아파트 관리비만 연간 6조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당연히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대표회와 위탁관리업체의 업무를 챙겨봐야 한다. 무보수 명예직이라는 회장이나 동 대표, 감사들 중에는 이권에 개입하거나 관리업체와의 유착이 의심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니 잡음도 많고 분란도 잦은 것이이다.

 

앞서 말한 필자의 지인이 염증을 느끼고 사퇴한 배경이 바로 이 대목이다. 어찌보면 아파트 관리야말로 풀뿌리민주주의의 시발점이 될수도 있다.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대표회의 회장 선출을 주민 직선제로 바꾼것도 '잠든 주민을 깨워 권리를 찾게 하는 것'이라는 취지라고 했다. 겉으로 조용한 것 같지만 속으로 앓고 있는 아파트 민주주의, 입주민들이 적극 참여해야 바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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