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고 내가 무조건 개발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다. 개발은 필요한 것이며 경우에 따라 새 길이 들어선 것을 반가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경이 무시된 채 건설된 새 도로는 본래 한국의 평화로움과 자연스러움을 완전히 파괴하고 말았다. 과연 이 많은 새 도로들이 다 필요하기나 한 걸까. 수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차가 없었다. 오토바이나 대중 교통을 이용해 전국을 다니곤 했다. 그래도 보통의 한국인들보다는 많이 둘러 본 것 같다. 해남 땅끝마을부터 북한까지, 홍도와 울릉도에 이르는 섬들까지 가 봤으니. 그리고 한국에서 100편이 넘는 사진과 글을 담은 여행기사를 써 오며 자전거 투어를 오래 한 덕분에 작은 국도와 비포장도로 또한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최근 내가 좋아했던 국도에 높은 고가도로를 건설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기둥이 세워진 것을 봤다. 자연스럽게 하천과 그 지역의 산세에 맞게 건설된 국도를 왜 마다하는 것일까. 왜 한국은 전기톱으로 나무를 자르듯 산들을 동강내 버리고, 계곡의 고요한 정취를 영원히 빼앗는 등 자연 훼손에 그 어마어마한 세금을 투자하는 것일까. 만약 5분을 아끼기 위해서라면,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다. 가끔 나는 한국 사람들은 새로 만드는 것에 대한 독특한 취향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름답고 성스러운 곳은 차로 쉽게 갈 수 있어야 하고 그곳에는 무조건 잠자리와 먹거리가 있어야 하는 걸까. 돈을 벌기 위한 욕심에 주변 환경과는 전혀 조화롭지 못한 모텔과 식당들을 줄줄이 세워 놓아야만 하는 걸까.
올해 초여름 독일에서 오신 어머님을 모시고 가족여행으로 홍도에 갔었다. 외지고 아름다운 돌섬이야말로 단연코 한국의 보물 중의 하나다. 나는 사람들이 홍도의 자연을 보기 위해, 그리고 개발의 물결에 거의 사라져가는 것들을 재발견하려고 가는 줄로 생각했다. 그러나 홍도에 가는 순간 깜짝 놀랄 일을 발견했다. 그림같이 작고 아담한 항구 한가운데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유리와 강철로 이루어진 여객선 터미널이 세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가파른 언덕배기에는 각자의 상업 공간들을 알리기 위해 눈이 시릴 정도로 어지러운 간판들이 걸쳐져 있었다. 과연 이런 일이 섬사람들 탓으로만 돌릴 수 있는 문제일까. 정치가·행정가 또는 개발론자들은 이 귀한 섬이 왜 사랑을 받는지 생각조차 해 보지도 않고 파괴에 나서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과연 이 섬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취향 때문인 걸까. 보물 같은 곳들이 '개발'이라는 괴물 앞에 하나씩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이런 내 모습이 낭만적인 감상에 사로잡혀 있는 어느 괴팍한 외국인의 생각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고속도로가 잘 연결돼 아무 곳이나 빨리 갈 수 있고, 자연 속 어디서나 모텔을 찾을 수 있는 편리함이 없더라도 아름다움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그리워하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지난해부터 전국에 걸쳐 새로운 캠핑지가 이곳저곳에 생겨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될지, 아니면 단순한 유행처럼 금세 사라질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만약 이것이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면 편리함 정도는 포기하고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소음으로부터, 그리고 바쁘다 못해 쉽게 지치게 만드는 도시 생활을 벗어나 자연을 느껴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으로 삼고 싶다. 미래 한국 자연 생활에 대한 희망이라고 여기고 싶다. 만약 그런 것이 아니라면 30년 뒤엔 내 아들이 자신의 유년기에 보았던 한국의 자연을 과연 볼 수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든다. '천하는 신묘해서 행하려 하면 그 반대가 있다. 그리하여 만약 행하려 한다면 패하게 되고, 붙잡고자 억지로 행하면 잃을 것이다.' 노자 도덕경 29장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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