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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여론조사 공화국

▲ 권 혁 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필자는 지난 며칠 동안 3통의 대선 관련 여론조사 전화를 연거푸 받았다. 2번은 집전화로, 한번은 휴대전화를 통해 받았는데, 모두가 조사원의 생목소리가 아닌 사전에 녹음된 ARS조사였다. 도대체 어떤 내용을 물어보는지가 궁금하여 녹음내용을 끝까지 다 듣고 해당되는 번호를 누르려고 하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 집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지 않을 수 없어 황급히 받아보면 "안녕하십니까...귀하께서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지지하십니까. 박근혜 후보는 1번, 문재인 후보는 2번, 안철수 후보는 3번, 기타 후보는 4번을 눌러주십시요"라는 기계음을 듣고 짜증이 안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12월 19일 대통령선거일 까지 우리 국민들은 시도 때도 없이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언제부턴가 선거여론조사가 우리 국민들을 짜증나게 만드는 선거공해로 변질되고 말았다. 가수 싸이 말고는 이렇다 할 자랑거리가 없는 우리나라가 어느새 세계에서 제일가는 선거여론조사공화국이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선거여론조사 공화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비단 넘쳐나는 여론조사 건수만을 두고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통해 정당의 대통령후보는 물론이고, 국회의원, 시도지사, 시장 군수마저 뽑고 있다. 심지어 정당간의 단일화 후보도 여론조사를 통해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이런 사례들은 전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여론조사가 이처럼 막강한 정치적 파워를 갖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국민들이나 정치인들 모두 여론조사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도 아이러니라 하겠다. 후보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의 운명을 바꿔놓을 수 있는 중요한 정치적 결정과 선택을 그 누구도 신뢰하지 않는 방법에 의존한다는 것은 난센스이자 정치 도박이나 다름없다.

 

우리나라 선거여론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조사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기에 실시된 여론조사들이 서로 달라 우리 국민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 춤을 춰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이렇게 조사마다 결과가 다른 것은 조사방법, 표본추출, 질문 등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다른 원인으로 언론사들이 값 싼 여론조사를 선호하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는 돈들인 만큼 나온다. 선거 때만 반짝하는 싸구려 조사기관들의 낮은 단가, 전문성 부족, 조사원칙 무시 등이 조사의 정확성을 떨어뜨린다. 특히 싸구려 조사 회사들은 주로 ARS조사를 하고 있다. ARS조사는 선거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참여하기 때문에 표본의 대표성이 크게 떨어진다. 그래서 ARS조사에서는 인지도가 높고, 열성 지지자가 많은 후보자들의 지지도가 실제보다 많이 나오게 되어있다.

 

본질적으로 여론조사는 과학이면서 동시에 기술이다. 딱딱하고 어려운 여론조사 결과를 독자들이 흥미롭고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적 측면도 중요하지만 과학성에 바탕을 두지 않은 기술성은 아무런 가치가 없으며, 더욱이 과학성보다는 기술성에 더 높은 비중을 둔다면 그것은 과학의 이름으로 포장한 상업적 저널리즘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일부 언론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서 여론조사를 활용하고 있는 것도 큰 문제이다.

 

여론조사의 생명은 국민들의 여론조사에 대한 신뢰라는 점을 감안하여 우리나라에서도 프랑스처럼 여론조사의 질을 평가, 감독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저질의 여론조사결과가 실시되거나 공개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이제는 심각히 검토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감독기구가 생긴다면 언론과 여론조사기관들은 조사 또는 보도의 정확성과 공정성을 위해 노력하게 될 것이고 일반 국민들은 공개되는 여론조사결과를 보다 더 신뢰할 수 있게 되어 좀 더 정확한 정치적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들이 여론조사는 만능이 아니며, 조사자의 의도에 따라 얼마든지 조작된 여론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는 일이다. 그래서 38.6% 등의 소수점 이하의 수치로 치장한 여론이 반드시 객관적이고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조사결과를 맹신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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