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레 한발 앞서 들이닥쳐
열정의 계절을 한바탕 흔들어대고
세상을 들었다 놓은,
청춘의 한 가운데를 긋고 지나간,
태풍 지나간 자리에 패인 상처에서
거듭 고개 숙이는 겸손을 배우게 하소서
마음 끝끝까지 펼쳐 모난 곳 덮어주는
보자기가 되게,
희미하게나마 어두운 곳 밝히는 60촉짜리
전깃불이라도 되게,
추위 앞두고 동당거리는 마음 감싸줄
털옷이 되게,
서로들 저만큼 서있는 사람들
반보기 하게 하소서
서툰 발걸음으로 징겅징겅 세상파도를 건너는
징검다리가 되게,
한 잎 한 잎 잘 썩어
겨울 잠 속에서도 싹 틀 준비하는 씨앗의
이불이 되게,
바람에 날려 흙으로 가는 잎새가 되어
무엇이든 되게 하소서
기어코 추락하게 하는 가을을 감사하게 하소서
가을과의 속 깊은 첫 만남을 축복하여 주소서
이 가을엔
※권천학 시인은 1987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그물에 갇힌 은빛 물고기''고독 바이러스''초로 비타민의 서러움 혹은' 등 9권이 있다. 캐나다 토론토 거주.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