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김은정 선임기자 - 문화선진국 되려면 표절에 더 이상 관대해서는 안돼…저작권자들의 지나친 탐욕에서 발생하는 문제도 심각 전북문화파워는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 많아
2000년대 초반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는 올해 절정을 맞았다. 물론 그 정점에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있다. 빌보드 차트에 오르고, 유튜브 최다 추천기록을 깨고, 미국 캐나다 등의 메이저 리그 경기장에서 그것도 경기 클라이맥스의 단골 응원가가 되더니 드디어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깜짝 스타' 1위에까지 오른 것을 보면 '싸이가 지구를 점령했다'는 말이 과장된 것만은 아니다. 한류 역사를 새로 쓰고 대한민국의 국가브랜드를 높인 '강남스타일'의 가치가 얼마쯤 되는지는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문화산업의 시대, 문화로 돈을 만드는 시대다. 캐릭터 하나로 기업이 살고, 뮤지컬을 팔아 도시가 먹고 산다. 문화가 경제로 치환되는 시대에서 산업적 가치는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지키느냐에 달려있다. 세계의 나라들이 자국의 산업을 위해 지적재산권 보호에 나서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근래 들어 저작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퍼블리시티권 분쟁이 늘어나는 것도 문화 산업화의 새로운 질서가 가져온 결과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문화산업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저작권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남용, 혹은 무의식적 관행이 깊이 뿌리 박혀 있기 때문이다.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남형두 교수(48)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저작권 분야의 권위자다. 그것도 한류와 직결된 엔터테인먼트와 스포츠법 분야가 전문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한류 열풍의 파고가 높아지던 시기, 그 중심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16년 변호사 생활을 접고 교수가 된 이후에도 저작권이란 기둥을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게 하기 위해 글쓰기로, 강연으로, 법제화 운동을 통해 분투하고 있다. 한류의 정점이 전북에 있다고 생각하는 남교수는 고향인 전북이야말로 문화산업의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지역이라고 확신한다.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연세대 남교수의 연구실에서 있었다. 3시간 넘게 이어진 인터뷰는 재미있는 강의와도 같았다.
-변호사 시절 인사 드려서인지 '교수' 호칭이 좀 낯섭니다. 학교로 옮긴지 얼마나 됐습니까.
"2005년 9월이니까 햇수로는 벌써 8년째군요. 제가 교수가 되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꾼 적이 없는데,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길이 있기 마련인가봐요."
-대학교수로 전업한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까.
"광장에 근무할 때인데, 영국의 한 텔레콤 회사와 국내 회사의 소송을 맡았었어요. 우리나라 회사가 영국 회사의 기술을 베껴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저는 영국 쪽 대리인이 되었는데, 완벽한 승소를 이끌어냈어요. 결과로만 보면 강감찬 장군의 귀주대첩 정도였지요. 그 이야기를 저녁 식사하면서 가족들에게 했는데 초등학생인 아들이 '아빠, 근데 아빠한테 진 한국회사 불쌍하다' 하는 거예요. 방망이로 뒷퉁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습니다. 내가 평생을 이렇게 이기고 지는 승부사로만 지내야 하는가 회의가 들었습니다. 그즈음 연세대에서 제안이 온 거예요. 뒤도 안돌아보고 왔지요. 그런데 정작 아들 녀석은 '아버지가 변호사 계속 했으면 더 좋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실패와 시련이 많았다고 하셨는데, 뜻밖입니다. 그런데 결과로 보자면 그런 과정이 있어서 행복하다고 느끼시는 오늘의 길을 만난 것 아닐까요.
"물론입니다. 법대는 독특한 환경이 있어요. 1학기 때 사법시험 1차 발표나면 한차례 초상집이 됩니다. 2학기 때 2차 발표나면 또 그렇죠. 그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제 경험인데요. 사법연수원에서는 1년에 두 차례 체육대회를 하죠. 제가 달리기를 좀 하는 편인데, 4백미터 계주에서 6팀 중 4등을 했던 저희 팀이 마지막 주자였던 저의 스퍼트로 역전을 해 1등을 했어요. 헹가래를 치고 난리가 났죠. 그런데 하루는 교수님이 판결문을 강의하면서 제 판결문을 사례로 들었어요. '내가 잘 썼나' 했는데 교수님이 저를 부르더니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고 하시더군요. 오시범의 사례로 뽑힌 것이었어요. 수모였죠. 그러시면서 덧붙이는 말씀이 '체육 특기자로 들어왔냐'고 하셨어요. 그 뒤로 제 별명은 특기생이 되었죠."
-상처를 많이 받으셨겠군요. 학생들은 그런 실패담을 들으면서 위안을 받았을테구요.
"그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여기 들어온 학생들 대부분이 사실 다른 사람한테 등만 보여주고 살아온 애들이잖아요. 우수하니까요. 그런데 등만 보여주고 사는 사람은 진짜 불행합니다. 다른 사람의 등을 못 보니까 어려움을 모르게 되죠. 나보다 앞에 가는 사람이 있는 것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살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못하니 패닉 상태가 되는 겁니다. 공항에 가보세요. 휙휙 이륙하는 비행기들의 대부분은 근거리행입니다. 기껏 일본 정도 가는. 그러나 미주나 유럽으로 가는 보잉 747같은 경우는 '못뜨는 것 아냐' 할 정도로 활주로를 다 가서야 뜹니다. 그러니 아직 날지 못한다면 큰 인물이 될 장거리행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너무 조급증에 시달리지 말라는 것이지요."
-저작권을 전공해야겠다는 특별한 인식이 있었습니까.
"우연한 계기였어요. 변호사가 되고 2년쯤 되었을 때인데, 개그맨 주병진씨가 운영했던 '좋은 사람들'이 제임스 딘 유가족에게 소송을 당했어요. 이름을 쓰고 초상을 썼기 때문인데요. 제가 주병진씨 쪽 대리인을 맡았어요. 그때 그 사건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의 퍼블리시티권 사건이었습니다. 상표 사건이 아니었거든요. 일반적으로 상표는 속지주의라 해서 해당 국가에 등록을 해야 합니다. '제임스 딘'이 미국에서는 유명한 상표지만 한국에서도 못쓰게 하려면 한국 특허청에 상표 등록을 해야 하죠. 그런데 '제임스 딘' 재단이 상표 등록하기 전에 주병진씨가 먼저 등록한 것입니다."
-퍼블리시티권은 이제 시사용어가 되었지만 일상에서는 아직도 인식이 낮지 않나요.
"당시에는 더 생소했죠. 미국에서는 이미 퍼블리시티권이 권리로 자리 잡았었지만, 한국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었을 정도였어요. 학계도 그렇고 법원 판례도 없었죠. 우리나라의 초유의 사건이 생긴 것인데, 그래서 과연 그 퍼블리시티권을 법원이 인정할 것인가, 초미의 관심사였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이겼어요. 법원의 판결은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배우나 가수 운동선수들의 이름과 초상을 상업적으로 쓸 수 있는 권리가 인정이 된다. 법률로 제정하지 않았어도 관습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죽은 사람한테는 인정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퍼블리시티권을 인정하되 상속성이 없다고 판결한 겁니다."
-저작권의 기본적인 취지는 이해가 되는데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내용이 많던데요.
"제가 이해하는 저작권은 두 개의 기둥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는 문화의 산업화죠.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문화를 내세우는데, 문화를 산업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부족합니다. 예컨대 문화인들에게 연금을 주거나 창작금을 지원하는 것은 일시적인 지원책이예요. 그러나 문화예술인들의 창작물을 권리로 보호해주면 그것은 지속적인 수익원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작권법을 문화의 기본법이라거나 문화산업법이라고 하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저작권은 문화산업을 진작시키는 요체입니다. 저작권을 제대로 이해하면 문화산업은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또 하나는 정직한 글쓰기입니다. 표절문제지요"
-근래 들어 저작권과 표절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는 것을 보면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산업화는 저작권 기본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저작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죠.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디즈니사의 곰 인형 '푸우'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십니까. 미국의 저작권 보호기간은 75년이었습니다. 그래서 '푸우'는 2006년에 저작권 보호가 끝날 운명이었죠. 그런데 2000년도에 미국의회에서 저작권 보호기간을 20년 연장했습니다. 2026년까지 '푸우'의 수명이 연장된거예요. 물론 미국에서도 위헌소송이 제기되는 등 논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국 산업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합헌판결을 냈어요. 곰 하나를 위해 미국 법이 바뀌고, 헌법재판까지 간 것이죠. 그 '푸우'가 경제적 가치를 환산하면 200억불, 우리 돈으로 20조예요. 저작권의 가치죠."
-한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데요. 이런 열기가 지속적으로 갈 수 있을까요.
"지금 한류는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국내에서는 한류 콘텐츠의 공급에만 너무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급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때로는 수요를 단속하는 것이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 수돗물의 수량을 조절할 때 열어서 조절하기도 하지만 입구를 막아서 더 멀리 나가게 하기도 하잖아요. 제2의 '욘사마' '뵨사마'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멀리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것을 조절하는 역할을 저작권이 합니다. 결국 저작권 권리를 통해 가치를 팔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작권으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그 가치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자칫 그것이 지나치게 엄격히 제한되면 오히려 창작을 위축시키는 결과가 되고, 문화 산업화에도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싶은데요. 산업화는 수요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나라 저작권 문제는 이용자들이 저작권을 지키지 않는 것도 있지만, 지나치게 저작권자들이 탐욕을 부리는데서 오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모범적인 사례라고 봅니다. 강남스타일 유튜브 조회수가 기록을 갱신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유튜브에 올리는 것 자체가 저작권 위반입니다. 그런데 원작자 싸이가 문제를 삼지 않습니다. 저작권에 위배되지만 권리자가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자기의 노래를 유포시킬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 것입니다."
-정보공유연대 운동은 활발한가요. 우리나라의 카피레프트(copyleft) 수준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저작권법이 개정되어서 미국의 공정 이용(fair use) 조항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왔어요.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피해가 크지 않고 사용하는 목적이 비영리적이라든지 등등의 몇 가지 이유에 해당되면 저작권 침해라 할지라도 침해가 아닌 것으로 보는 그런 법조항입니다."
-그것과 반대되는 사건이 있었죠. 손담비 노래를 부르는 아이를 찍어 블로그에 올린 아이 아빠가 소송을 당했던.
"손담비의 '미쳤어'라는 노래였죠. 손담비의 노래를 신탁 받은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문제를 삼은 것인데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선택이었어요. 따져보면 저작권 침해가 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된다한들 무슨 손해를 보았습니까. 그런 경우는 그야말로 저작권법을 형식적으로만 이해한 결과예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니까 협회에서 없던 것으로 하려고 법적 소송을 진행하지 않고 포기 했죠. 그런데 아이 아빠가 정보공유연대측의 지원을 받아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이라해서 '저작권을 침해하지 않았음을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역으로 제기했습니다. 결국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는 판결을 받았어요."
-저작권의 또 한 기둥이 정직한 글쓰기라고 하셨는데요. 표절 문제는 지금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었죠.
"제 개인적으로도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연구를 집중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가 문화선진국이 되려면 표절에 대해서 더 이상 관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표절을 바라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습니다. 판결이나 정치인들이 쓰는 글이나 회고록은 주로 다른 사람 대필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령작가'라고 하죠. 그것은 사실 용인된 것들입니다. 표절의 대상이 아니예요. 그러나 학자로서 다른 사람의 글을 밝히지 않고 사용했다면 그것은 표절이죠. 표절은 그것의 메커니즘과 기본 철학, 저작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봐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녀사냥이 되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다보면 정작 악의적인 표절을 거르는 일은 놓치게 됩니다."
-표절은 학교교육이 잘되면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요.
"표절과 인용 교육은 어려서부터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을 하는데 '서울로 못가도 반듯하게 가야 한다고 교육 하는 것'이 바로 정직한 글쓰기입니다. 요즈음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온갖 글을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학계의 관행은 결과만 좋고 논문 편수만 많으면 된다는 식이지요. 결국 학문 발전도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님은 전라북도 문화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하시던데요. 정작 자치단체들은 말과 생각으로는 문화가 도시를 살릴 수 있다고 하면서도 실천에 옮기는 일에는 소극적입니다.
"그것이 좀 답답합니다. 문화는 새로운 시대의 중요한 경제 가치입니다. 이미 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요. 저는 전주와 전북의 문화파워가 한국의 중심이 되고 세계로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문화에는 유니버설리티(universality)와 로컬리티(locality)가 있잖아요. 보편성과 지역성. 그러나 지역성을 가지면서 그것이 보편성을 띠려면 지역성이 아주 뛰어나야 합니다. 전주와 전북은 그런 자원과 역량이 충분합니다. 전북이 우리나라 문화산업화를 이끄는 저작권 중심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궁극적으로는 문화산업화의 중심 역할이 되겠지요. 대단한 예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의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문화산업의 시대에 전북의 경우, 자원은 많으나 산업화의 길은 찾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왔습니다.
"지금은 OSMU(one source multi uses) 시대입니다. OSMU를 순수한 우리말로 하면 '우려먹기'예요. 나쁜 뜻이 아닙니다. 좋은 원작으로 2차 3차 창작물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 성공이 뮤지컬 '맘마미아'잖아요. 하나의 좋은 원작은 뮤지컬 발레 영화 음악 등 다양한 창작물을 만들어내고 가치를 높입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저작권입니다. 저작권법의 목적은 저작권자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단순히 창작자를 보호하는 것만은 아니에요. 좀 더 분명하게는 '창작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 및 관련산업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이 목적입니다. 저작권법이 추구하는 최고의 목표는 문화발전, 문화산업의 발전에 있습니다. 전북이 문화산업에 진정한 눈을 뜨게 되면 가장 가능성 있는 지역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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