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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우체국 앞에서'를 들으며

디지털 통신 수단으로는 빠른 소통은 가능하지만 마음까지 전달하긴 한계

▲ 이 승 재

 

서울지방우정청장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어릴 적 우체국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라는 노래다. 우리들에게 우체국은 그리움과 기다림이 교차하는 마음의 고향으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체국은 더 이상 그 노랫말처럼 한적하고 여유가 넘치는 공간만은 아니다. 인터넷, SNS 등의 발달로 우편물이 크게 줄어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에 직접 편지를 써 본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하면서 현란하게 자판을 두드려 댄다. 밤새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며 정성스럽게 써내려간 손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을 찾던 그 시절과 비교하면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초등학교 시절 연말이 되면 얼굴도 모르는 국군장병 아저씨께 편지를 쓰느라 진땀을 흘렸고, 커서 전방 부대에서 근무할 때는 어린 학생들의 위문편지에 잠시나마 고단함을 잊기도 했다.

 

한 때 '국민 취미'였던 우표수집도 그 수요가 줄면서 급속히 위축됐다. 1979년 신문기사를 보면 어린이날 서울 시내 각 우체국 앞에 우표를 사려는 아이들이 새벽부터 길게 줄을 서고 점심도 거른 채 뙤약볕 속에서 오후 늦게까지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이 나온다. 우표를 통해 세계 여러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한 때 우표수집이 인기가 있었는데, 여러 가지 게임이나 놀거리가 많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취미로 어필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면 편지와 우표가 점점 사라져 없어지는 날이 올까? 전화와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 머지않아 우편업무는 완전히 사양화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그리워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를 통해 빠르게 소통할 수는 있지만 편지의 따뜻한 아날로그적 감성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편지는 편지지, 손 글씨, 잉크, 우표, 그리고 집배원 등 아날로그적 요소들로 구성된 '불편하고 느린' 통신수단이다. 하지만 디지털 통신수단이 마음까지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느끼게 되면 사람들은 다시 편지를 쓰기 시작할 수도 있다.

 

최근 우체국에서는 고객 맞춤형인 '나만의 우표'를 발행해 국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그 전까지 우표는 우체국에서 디자인해 발행한 것만 사용했으나 이제는 나의 사진이 담긴 세계에서 유일한 우표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만의 우표'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도 많이 활용하고 있다. 어린이날을 기념해 전국 지역아동센터 어린이들에게 자기 사진이 담긴 우표를 만들어 주기도 했고, 여수엑스포 행사를 소개하는 우표책을 제작하기도 했다. 한류 상품으로 개발한 '배용준 우표'와 '소녀시대 우표'는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엽서도 일률적인 '관제엽서'에서 벗어나 '맞춤형 엽서'가 발행되고 있다. 작년 연말 유니세프 엽서 2종을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한국 집배원의 변천사를 알리는 '점토인형 그림엽서'도 제작됐다. 일부 지자체에서는 지역의 관광명소나 주요 정책을 홍보하기 위한 용도로 우체국에서 제작한 '나만의 우표'나 '맞춤형 엽서'를 활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우표나 엽서, 연계상품 등에 한류를 활용한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국내외 고객들에게 한국과 한국의 우정문화를 알려 나갈 계획이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고 한다. 이제는 비나 눈이 오면 또 다른 걱정이 앞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우편물을 제 때 배달해야 하는 우체국에 근무하면서부터 그랬다. 그래서일까? 윤도현의 '가을우체국 앞에서'의 아름다운 가사를 액면 그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 이면에 어른거리는 우체국 직원들의 얼굴이 먼저 보이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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