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대보름맞이는 농촌에서만 전개한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전주시 다가공원에서 정월대보름맞이가 있었다. 농촌 마을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달집이 세워졌다. 삭막한 겨울 도시에 흥겨운 풍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행사장에는 민속춤과 놀이들이 풍성하게 진행되어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참여했다. 무엇보다 이 날의 백미는 둥근 보름달이 중천에 뜰 때 달집을 태워, 달을 향해 망월이야! 라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물끄러미 둥근 달을 바라보는 순간 도시속의 한 개인을 넘어서 우리라는 동질의식을 경험하고, 함께하는 세상을 큰소리로 불러보는 것이다. 이처럼 정월대보름은 농촌을 기반으로 하지만 도시에서도 정월대보름맞이를 하는 우리고장의 즐거운 명절이자 축제이다.
대동놀이로서 정월대보름의 의미는 대보름맞이를 준비하는 방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 24일 정월대보름날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 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 달집태우기가 진행되었다. 30여 년 전 노촌리 4개 자연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청년회를 결성하여 지금까지 꾸준하게 노촌리 정월대보름맞이를 주관해오고 있다.
정월대보름을 맞이하기 전날 마을청년회원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하여 달집을 짓는데 필요한 소나무를 산에서 간벌하고, 마을공동산 뒤편의 대나무도 함께 베어 채취한다. 나무더미를 묶어 트럭에 실어, 마을 앞뜰 논 한가운데 옮긴다. 장소는 마을어른과 상의하여 가장 안전하면서도, 마을사람들 모두가 참여하기에 불편이 없는 곳으로 잡는다. 긴 목재는 기둥을 삼아 세우고, 마른 콩대와 짚을 군데군데 불길로 삼고, 생소나무를 층층이 쌓아 올렸다. 해질녘 둥근달이 차오를 때 쯤 집채보다 큰 거대한 달집이 완성되었다.
보름날 점심 마을회관에서는 마을어른들과 주민들이 소원을 적고 있었고, 거실과 다른 방들에서는 나물과 오곡밥으로 소복하니 잔칫상을 차려 마을사람들 모두가 같이 먹는 북새통을 이루었다. 상차림 주변으로는 술판과 이야기판이 펼쳐졌다. 한쪽에서는 풍물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쪽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뛰놀고, 마을회관 앞마당에서는 모처럼 윷판이 돌았다.
논 가운데 세워진 달집은 하얀 소원지로 곱게 치장을 했고, 소박한 고사상이 차려졌다. 해질 무렵 마을회관에서 풍물패가 마을사람들을 이끌고 달집으로 향했다. 풍물패는 달집을 한 바퀴 돌아 달뜨는 동쪽을 향해 모였다. 마을 어른들과 젊은 사람들 모두가 달을 향해 마을의 풍년을 기원하며 제를 올렸다. 흐린 저녁하늘이 열리더니 둥근 달이 달집에 걸리자 달집에 불을 붙였다. 큰 달집은 용솟음치듯 불꽃을 일렁이며 생 대나무를 태워 큰소리로 터졌다. 할머니들이 소지를 올리며 비손을 하고, 어린 아이들이 달집주위를 뛰논다. 달이 중천에 뜨고 불기운이 사그라질 무렵까지 마을사람들이 풍물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술과 음식을 나누며 달집을 돌았다. 전주로 돌아오는 길목 여러 마을에서 달집을 태운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정월대보름이면 전라북도 전역의 마을들이 축제로 일렁인다.
우리는 같이 일하고 놀며, 빌고 살아간다. 음식을 나누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 생명의 신인 달을 섬기며 풍요와 안녕을 소원한다. 정월대보름맞이는 공동체문화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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