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내에서 빚어지는 끔직한 범죄행위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오늘의 가정은 그리 온전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아지는 듯하다. 그래서인지 어느 일간지의 칼럼니스트는 사랑의 온실이고 화목의 그루터기라는 가정이 현실에서는 점점 더 불화의 근원이고 비극의 발원지가 된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가 주목한 것은 그리스 비극에서 보이는 가족 간의 갈등과 비극적 결말이었다. 이 칼럼을 보면서 왠지 우리 사회 일각에서 비극으로 치닫는 현실이 스쳐지나가 서글프다.
하지만 눈을 돌려 우리의 전통 문화를 보면 생각은 달라진다. 우리네 전통 속에서 가정은 언제나 정이 충만한 곳이었고, 부모와 자식 간의 주고받았던 사랑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새록새록 포근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특히 우리 지역에서의 키워낸 효 문화 전통 가운데 조선불교사의 대표적인 선승(禪僧)인 진묵대사(震默大師)의 일화는 종교적 제약마저 뛰어넘는 것이었기에 더욱 주목된다.
불교계는 물론 유교, 증산교, 원불교의 중심인물로부터 추앙받았던 진묵 대사는 출가하는 자식을 두고 걱정하는 어머니에게 "천년동안 제사가 끊어지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안심시키고, 출가한 후 절 가까운 곳에 어머니를 모셔 봉양했으며, 모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어머니를 위해 산신령에게 고해 모기떼를 다 쫓아 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만경 북쪽 산의 길지를 택해 장사지냈는데, 그가 어머니 묘소의 풀을 깎고 제사를 지내면 그 지역의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지역은 물론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앞 다투어 묘소를 돌보았고, 그 전통은 오래도록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가 어머니에게 한 약속이 허언이 아니었던 것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어머니에게 바친 제문이다. "열달 동안 태중(胎中)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으리오. 슬하에서 3년 동안 길러주신 은혜 잊을 수 없습니다. 만세 위에 다시 만세를 더하여도 자식의 마음에는 그래도 부족하온데, 백년 생애에 백년도 채우지 못했으니, 어머니의 수명은 어찌 그리도 짧습니까?"라며 절절한 심정을 담은 그의 제문에는 우리네 전통 속에서의 부모 자식 간의 온전한 정이 담겨 있다. 특히 그가 어머니 배 속에서의 열 달 동안의 은혜, 그리고 3년 동안 길러주신 은혜라는 언급은 부모의 자애속에서 굳건히 자란 자식의 보은의 정이 오롯이 담겨 있다.
진묵대사의 제문에서 드러난 언급처럼 우리네 전통 문화 속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덕목은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었다. 일방성이 아니라 호혜성이 자리한 가정이라야 굳건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부자유친(父子有親)을 가르칠 때 부모의 자애와 더불어 자식의 효순(孝順)을 함께 가르쳤고, 부부유별(夫婦有別)을 이야기 할 때 남편의 도리와 더불어 아내의 도리를 함께 가르쳤던 것이다.
오늘의 가정을 돌아보면서 우리는 이러한 호혜성의 원칙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목소리가 커진 어느 일방의 목소리에 묻혀 가족구성원이 숨죽여 지내거나 가족 누군가의 일방적인 요구나 베풂에 난감해 하는 가족 구성원이 아니라 서로에게 도타운 온정을 베푸는 우리네 가족구성원이 가정 내에 자리해야 가정은 사랑의 온실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의 효 문화를 통해 서로 정을 주고받는 가정의 달 5월을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