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관조
50년 오랜 지기인 이향아 시인은 시집에 실린 87편의 시들 중에서 '어안을 읽다'를 제목으로 특별히 추켜든 이유를 이렇게 짐작했다. '이운룡 시인은 종래의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듯이 상식적인 시각을 포기하고 싶어 하는가 보다. 오랫동안 눈을 뜨고 있으면서도 발견하지 못한 것들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나 보다. 그는 차라리 흐리멍덩한 어안으로 읽어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투시하는 대신 눈이 보여주는 상식과는 이별하고 싶어 하나 보다'고.
시인 자신은 시집 출판 이전에 이미 이 제목을 정해놓고 전주 한옥마을에서 구입한 한지 백지책자에 '어안을 읽다'를 육필로 써놓았단다. "물고기는 살아서 또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않는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곧 실재와 현실 너머의 세계를 '어안'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기 위한 자각의식으로 이해하여도 좋으리라"고 시집 머리말에서 밝혔다.
시인은 요즘 자신의 삶과 문학생활을 정리하는 중이라고 했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따를 뿐 별다른 감정이 없이 담담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2011년과 2012년 두 가지 수술을 받고 난 이후 기억력이 많이 쇠퇴했고, 체력도 허약해져 언제까지 볼펜을 잡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시집 발간도 7순 기념으로 2006년 낸'산새의 집에는 창이 없다'이후 지금까지 쓴 시들을 여력이 있을 때 정리하려고 했단다.
시인의 이런 겸양과 달리 시의 골격과 구조에서 일관된 모습을 만날 수 있다고 이향아 시인은 평했다. 특히 '지구촌 안개지역' 시와 관련, "시인의 어조는 고발하는 자의 격앙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여과를 거친 다음의 우아하고도 유려한 색채를 띠고 있다"며, 특히 "순응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이운룡 시인의 모습에서 유정한 세월의 그림자를 쓸쓸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늘건반''가을의 불륜''달빛 깨물다''새의 주검''소리바다''하늘의 비수''대지가 점령당했다''뜨거운 그늘''혈맥지도''설산 자화상''겨울 속의 봄''아름다운 눈물''통풍구는 좁을수록 좋다' 등의 시제가 보여주듯, 노 시인의 상상력과 역설이 담긴 속깊은 시들을 마주할 수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