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 교수 '정군수 시집 - 늙은 느티나무에게'
"토종닭 백숙 요리를 유난히 즐기는 친구 덕분에 나는 '산에 놓아기른 토종닭'으로 변신한 그 속성 토종닭을 먹게 될 때가 더러 있다. 씹으면 씹을수록 질기기만 하고 이빨만 아픈 그 재수 없는 폐계를 뜯을 때마다, 쫄깃쫄깃하면서도 차지고 씹을수록 고소한 뒷맛이 입안에 착착 앙기는 토종닭, 명절이나 제삿날이면 투가리에 묻은 냄새까지 혓바닥으로싹싹 핥아먹던 어린 시절의 그 토종닭 맛이 새록새록 그리워지곤 했다."
정량 우석대 명예교수(시인)가 정군수 시인을 두고 꺼낸 '토종닭론'이다. 정군수 시인이 최근 낸 시집 〈늙은 느티나무에게〉(신아출판사) 발문을 통해서다. 정 교수는 "시인의 초고를 읽는 동안 내내 아는 입만 아는 토종만의 그 정겨운 뒷맛이 새삼스러웠다"고 평했다.
정 교수는 또 정 시인의 시가 전체적으로 매우 편하게 읽힌다고 했다. 나아가 그의 시를 읽는 일이 옹골지고 정겹단다. 그것은 향수를 환기시키는 인간적 따뜻함과 시적 진실에 대한 열정, 세상사에 관한 통찰, 토종적 미학의 숙련도 때문으로 보았다.
2009년 〈봄날은 간다〉 이후 4년만에 낸 정 시인의 4번째 시집 〈늙은 느티나무에게〉는 '새의 빈 뼈를 만유인력이 무서워한다''새들이 물어가지 못한 깨꽃노래''화석에 무의 새기고 살아온 은행꽃''칼 부스러기만 모아다 꽃을 피웠다''눈물이 붉어 꽃이 되었다''제 몸뚱이를 감고 절벽을 오르다' 등 다소 긴 부제를 달고 6부에 걸쳐 100여편의 시로 엮어졌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자연과 인간, 사회문제 등 다양한 소재들을 폭넓게 풀어놓았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육친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 많다. '육친은 우리 삶의 직접적 뿌리이기에 육친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 정서에 닿아 있고 그런 소재일수록 자칫하면 상투적 감상이나 그 주변에 머뭇거리기 십상인데 정군수의 육친에 관한 시편들은 적절한 상관물이 동원되어 그런 상투성을 벗어나 우리의 보편적 정성에 자연스럽게 맞닿는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병석에 누워계시던 아버지의 깻묵 썩는 냄새가 아버지의 무덤 언저리에 있는 깨밭의 향그러운 깨꽃냄새로 흩날린다는'깨꽃냄새'와, 고단한 삶을 견디며 산 어머니를 떠올린'복숭아뼈''섬'시를 그 예로 들었다.
중앙동 재래시장 빈지문짝 기둥에
'얼음연탄'이라고 허물어지는 글씨로 쓴
문패만 한 간판이 붙어 있다
꼬부랑 주인한테 물었더니
여름에는 얼음 팔고
겨울에는 연탄 파는 집이란다
작은 간판에 많은 글씨를
다 넣으려니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그걸 모르고 괜히 겁먹었구나
시를 저렇게도 써야겠수나
한 수 배우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겁다.('얼음연탄'전문)
정량 교수는 정 시인이 전북문인협회장을 맡으면서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을 염려했지만, 이 '얼음연탄'작품을 포함 '비움을 만나고서야' 등의 시를 읽고 다소 맘이 놓였다고 했다. '얼음연탄'을 통해 꼭 필요한 말만 써야 한다는 시창작의 기초적인 불문율을 이야기 하면서 끊임없이 詩道에 정진하려는 의지를 읽었기 때문이다.
정 시인은 "쓰지 않으면 어둡고 답답하여 쥐 소금 먹듯 조금씩 썼다"며, "나이 들어 생긴 벗이 새벽이라 제 집 찾아가는 별을 보며 썼다"고 시집 서문에 밝혔다.
계간 〈시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고교 국어교사로 정년퇴임했다. 현재 전북문힌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새천년문학상·이철균문학상을 수상했다. 〈모르는 세상 밖으로 떠난다〉 〈풀은 깎으면 더욱 향기가 난다〉 〈봄날은 간다〉 등의 시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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