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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 교수가 들려주는 '볼츠만의 원자'

어려운 이론 서적 아닌 한 시대 과학자 이야기 / 젊은 세대 꼭 읽어보길

지난해 7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우주를 구성하는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하는 힉스 메커니즘의 증거인 힉스입자의 존재를 49년만에 확인하였으며 힉스입자를 예측했던 피터 힉스, 프랑수아 앙글레르가 올해 그 공로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였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빅뱅 우주론의 표준모형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인 쿼크 6개, 렙톤 6개와 입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담당하는 4개의 매개입자로 구성되며 마지막 빈자리였던 힉스입자가 채워진 것이다.

 

원자라는 개념자체가 없었던 그리고 원자 또는 분자의 존재를 논쟁하던 시대를 거쳐 원자를 우주의 최하위 구성요소로 이해했던 우리 세대까지 '더 이상 쪼갤 수 없는'이라는 개념은 물리학의 발전과 함께 변화해 왔다. 우리세대가 중등 및 고등교육을 받던 때까지도 원자가 우주의 최하위 구성요소였다. 어원적으로 '원자(atom)'라는 단어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나 이미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원자는 더 작은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이 밝혀져 있다. 17-18세기 뉴턴 이후 근 두 세기를 거쳐 성취된 고전 물리학의 핵심이론들의 바탕 하에 20세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많은 과학자들이 이뤄낸 현대물리학의 괄목할만한 발전은 여전히 인류에 의한 진행형의 지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볼츠만의 원자'는 원자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던 19세기 유럽에서, 원자론과 에너지론의 전개과정에서 벌어지는 과학, 철학, 종교, 수학적 이야기들을 볼츠만이 평생을 추구해온 기체운동론을 축으로 살펴본 책이다. 저자 데이비드 린들리는 원자론의 철학적 연원과 물리학이론으로서 기체운동론의 확립과정에 있어, 마치 남극에서 얼음기둥을 채취하여 지구의 기상상태를 연구하는 기상학자처럼, 기체운동론의 출발점이 되는 원자론을 둘러싼 기상도를 보여주고 있어 당시대의 옵서버가 된 것처럼 느끼게 하는 독서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이 책에서 루트비히 볼츠만의 전기가 아니라 과학이론의 발전사를 쓴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저자는 오스트리아 태생 볼츠만의 생애에 대한 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분석하였음이 분명하여, 채굴된 시간의 기둥에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부터 시시콜콜한 사실에 이르기까지, 볼츠만이 고집하고 추구했던 원자론에 근거한 기체운동론의 전개과정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가족과 스승 그리고 동료와 제자, 후학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겹겹이 들춰지고 있다.

 

이야기 속의 갈등은 에너지론과 원자론의 대립 속에 전개된다. 이 책의 서문은 "나는 원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 말은 1897년 1월 왕립과학원 학술대회에서 열을 그저 에너지로만 이해하고자 했던 에른스트 마흐가 제기 했던 말이다. 그는 당시대에 유명했던 물리학자의 한 사람으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음속의 배수에 해당하는 속도단위인 마하를 고안한 사람이다. 오늘날 원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의 말은 우리의 과학적 진보가 얼마나 연륜이 얕은 것인지를 실감나게 해준다.

 

반면 볼츠만은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법칙), 즉 뜨거운 물체가 반드시 식게 되는 이유를 원자(분자)의 움직임으로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한 가지 문제에 집착했다. 그는 원자론을 바탕으로 열의 변화를 기체 내 원자(분자) 움직임에 의한 것으로 보고 통계학과 확률을 이용하여 열역학 제2법칙 설명하고자 하였다. 반면 빛이나 소리 열 등처럼 감각의 범위에 있지 않은 즉 인지의 세계를 벗어나 존재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을 제시하는 이론은 추측에 불과하며 반과학적이라고 믿었던 마흐로서는 볼츠만의 기체 내에 원자 또는 분자의 운동은 허구처럼 보였을 것이다.

 

이들의 대립은 현재의 시간으로 보면 진실에 대한 비난과 무지에 대한 환호에 다름 아니었다. 그러나 당시의 시간으로 보면 마흐의 승리처럼 보였으며 그 대척점에서 너무 많은 심리적 에너지를 소비하며 신경쇄약의 말기를 보내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감해버린 볼츠만의 생애와 업적은 잊힐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은 볼츠만이 제시한 방법을 이용하여 원자의 존재를 증명하였고 볼츠만의 평생에 걸친 원자에 대한 확신이 옳은 것임을 증명해주었다. 따라서 볼츠만은 마흐와의 힘든 싸움 끝에 현대 물리학의 기초를 다진 과학자가 되었으며 그의 기념비에 승리의 식 S=klogW을 새기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을 당시 주변에 소개하고픈 책으로 꼽고 있었으나 서투른 말을 풀어놓기에 쉽지 않은 주제였으므로 오랫동안 보관하던 터였다. 이 책은 밀도가 높기는 하나 이론서적이 아닌 이야기책의 부류에 속할 것이다. 따라서 물리학이나 통계학 등에 대한 최소한의 개념을 굳이 이해하지 않더라도 한 시대를 살다간 과학자가 주인공이 된 실화 소설로 여기고 읽는다면 그 안에서 소용돌이치던 19세기의 한 단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성의를 보여 역자가 책 말미에 첨부해놓은 평형열역학에 대한 소고를 먼저 읽고 책머리로 들어간다면 더욱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인문학 편식독서 추세를 감안하면 인문계열 또는 자연계열을 떠나 특히 젊은 세대에게 다시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김관식씨는 전북대 의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자인산부인과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시인 겸 전북작가회의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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