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때 한옥마을 등 긍정적 측면 많아
지금 김지사는 권력의 무상함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힘 있던 시절에 못 느꼈던 생각들을 많이 할 것이다. 인심이 어떠한가도 느꼈을 것이다. 예전 같으면 면전 복배하던 사람들이 서서히 등 돌리는 모습도 봤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0·26 사건으로 청와대를 나와 사람들한테 겪었던 일들에 비하면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그래도 김지사의 맘고생이 클 것이다. 산에 오를 때 보다 내려 올 때가 더 힘든 법이다. 27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서 탄탄대로를 달려 민선 지사까지 40년간을 봉직해온 김지사는 관운이 무척 좋았다. 물론 본인은 장관이나 국회의원을 못해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행정관리로 출세한 사람이다. 그간 시·도정을 펴면서 때로는 밤잠을 못잘 정도로 많은 고민도 했을 수 있다.
김지사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역사의 몫이지만 대체적으로 잘한 면 보다 잘못한 면이 적지 않았다. 전주시장 때는 도지사를 하려고 열정적으로 시정을 펴서인지 긍정적인 면이 많다. 한옥마을을 만든 것은 그의 공직생활 중 수작이다. 그 때 한옥마을을 만들지 않았으면 지금 한옥마을에 5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질 않았을 것이다. 그가 시장을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해 그 덕을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사가 되면서부터 도정이 안풀리고 적폐가 쌓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새만금현장에서 대통령 후보로서 출정식을 가진 날 김지사가 대들었던 점이 MB정권 내내 김지사를 힘들게 했다. 심지어 사은숙배의 편지를 쓰는 수모를 겪었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김지사가 아무리 새만금특별법이 통과 안 돼 서운했다고 해도 출정식날 그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 후보에게 쏘아 붙인 건 잘못이었다. 축하는 못해줄 망정 고춧가루는 뿌리지 않았어야 옳았다. 그날 이후 MB와의 관계가 불편했고 MB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전북이 어려웠다.
지사는 시장 군수와는 역할이 다르다. 지사는 정치인인 만큼 중앙정부와 정치적 관계가 좋아야 소신껏 일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김지사는 복도 없다. 고교와 대학 고향후배인 정동영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이 대선에서 낙선한 것도 전북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다. 도민들이 정 대통령 후보한테 몰표를 준만큼 시련이 더해졌다. MB 정권 내내 전북은 찬밥이었다. 그나마 위로 삼을 수 있었던 건 새만금토지이용계획을 변경해서 농업용지 비중을 줄이고 대신 산업 용지를 70%로 늘려 준 것이다. 새만금특별법 통과와 새만금 신항만 착공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 때는 새만금개발청 발족과 더불어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북 유치 등을 꼽을 수 있다.
지사 때 도정 제대로 펼치지 못해
김 지사가 자업자득한 면도 많다. 인의 장막에 갇혀 자신을 지지하고 지원했던 세력들한테는 무한한 애정을 과시했던 것에 비해 반대측은 꼴도 안 보려는 차가운 입장이었다. LH를 경남으로 빼앗기고 프로야구단 10구단 유치 좌절은 도민들에게 큰 상처와 좌절감만 안겨줬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모든 분야에서 호·불호로 나눠져 심지어는 호가호위하는 사람들이 발호하기도 했다. 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충성도에 따라 입장을 달리했다. 능력과 깜도 안 되는 사람들을 주변에 포진시킨 건 잘못이었다. 전주시장 시절 기계산업리서치센터(현 한국탄소융합기술원)을 설립할 정도로 열정을 보였지만 지사로 가면서는 거꾸로 송하진 시장을 힘들게 했다. 아이러니다. 전주 완주 통합 무산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통합하자고 나선 지사가 통합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손발을 뺐기 때문이다. 이점은 두고두고 비판 받아야 한다. 비서실장과 측근들의 임기 내내 인사 전횡은 도청 공조직을 무력화시켰고 도를 무력증에 빠지게 한 요인이었다. 70%의 지지를 받은 송하진 당선인은 도민만을 위하는 도정을 펼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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