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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31일 오후 11시 59분 46초

▲ 김제김영 시인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다말고 어려워서 여러 번 덮어버렸다. 인터넷의 ‘책 읽어주는 여자’를 찾은 적도 있다.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마션’ 등 우주여행에 관한 영화를 여러 편 찾아서 보았다. 어떤 오기 같은 것이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내셔날 지오그래픽에서 만들어놓은 ‘코스모스’ 동영상을 발견했다. 13부작을 다운받아서 일주일 넘게 집중해서 보았다. 역시 우주는 광대하고 나는 여전히 이해하기 힘들다는 결론만을 확인했으나 시간만 소비한 것은 아니었다.

 

우주달력 속 인류는 티끌에 불과

 

우주달력은 138억 년 전 우주가 탄생한 빅뱅을 1월 1일 0시로 하고, 지금 현재를 12월 31일 자정으로 가정하여 만들었다. 어마어마한 시간을 1년으로 축소해서 만든 압축달력이다. 한 달은 10억년이고, 하루는 4천만 년이다. 태양은 8분 전의 과거고, 달빛은 1초 전의 과거다. 여기까지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야기가 나오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우리는 12월 31일 9시 45분에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350만 년 전이다. 모세는 7초 전, 싯달타는 6초 전, 예수는 5초 전, 모하멧은 3초 전에 태어난다. 그 짧은 시간에 이들은 인류 정신의 한 축을 구축했다. 12월 31일 11시 59분 46초에 인간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문자를 모르고 살던 인류의 모든 것이 멸실되는 것을 간신히 막을 수 있는 시간이다. 문자의 발명으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마련되었다.

 

‘코스모스’를 읽다보면 빛이 우리들과 가까이 있으면 ‘태양’이 되고 우리에게서 멀리 있으면 ‘별’이 된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가 그렇게 이름 지었을 뿐 그것들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중심도 없고, 가장자리도 없는 우주 공간을 분별하기 위해 임의의 점 하나를 찍는다.(올해는 우주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이 참으로 민망한 시국이다). 이 임의의 점을 중심 혹은 정상이라고 믿으며 거기에 집착하고 그에 따른 온갖 힘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임의의 점은 언제든 쉽게 옮길 수 있다. 그리고 쉽게 지워버릴 수 있다. 우주의 무한함을 증명하기 위한 일시적인 장치이기 때문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인 유전자(The Selfish Gene)’에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인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였다. 사람도 생물이므로 유전자가 증식을 위해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말이다.

 

‘시간은 모든 것이고, 인간은 시간의 사체일 뿐이다’는 마르크스의 서늘한 말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것도, 사실은 드넓은 우주에 찍힌 아주 작은 임의의 점일 뿐이다.

 

사람이라는 생물이 유전자를 보전하는 도구이고, 시간의 사체일 뿐이라는 말 앞에서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었던 자만심 내지는 교만함이 슬그머니 무너지게 된다.

 

지금의 나는 자유로운가

 

지금 나는, 삶의 본질에 대해 의연한가? 세상의 균형과 불균형을 똑같이 아름답게 바라보는가? 지금 나는, 임의의 점 하나에 집착하고 몰두했던 시간들을 내려놓고 자유로운가? 멸실되지 않을 역사와 정신을 위해 글을 쓰는가? 나의 글과 나의 행동은 서로에게 당당한가? 2016년이 저물어가는 12월에 이런 질문들이 나는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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