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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함에 대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이다

▲ 최진영 독립영화 감독

“송구합니다 ” 작년 국정농단 사태 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청문회에서 계속 중얼거렸던 말이다. 그는 도대체 누구에게 송구한 걸까.

 

“죄송합니다” 최순실이 귀국 후 첫 검찰 출두 후 흐느끼며 중얼거리던 말인데 누구에게 죄송하다는 건지, 구속 된 이후 특검사무실 앞에서 “민주주의 특검이 아니다” 라고 취재진을 향해 고성을 지른 걸로 보아 국민에게 죄송한 모양은 아닌 듯 하다.

 

“국민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다” 탄핵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출석 때 언급한 단 두 마디의 말이다. 국립국어원에 의하면 이재용부회장과 박근혜 전대통령이 사용한 ‘송구스럽다 ‘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와는 약간 거리가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죄송하다’ ‘미안하다’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다고 한다.

 

묵묵히 자신의 일을 수행하며 삶을 지탱하던 시민들이 작년 국정농단 사태를 바라보며 얼마나 상처를 받았고 분노했었던가.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어서 (가만히 있으라는 한마디에 우리는 2014년 4월을 어떻게 보내왔던가) 가을을 거쳐 겨울의 추위에 바들바들 떨며 전국의 광장에 나가 마침내 “피청구자 박근혜를 파면한다” 라는 문장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파면된 전직 대통령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를 마지막으로 그 뒤 단 한 번도 사과를 하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은 억울하고 재판을 끌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는 요즘이다.

 

미안하다는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운걸까? 개인적으로 힘든 한 해를 보냈다. 같이 작업을 했던 스탭이 제작비를 횡령했던 일이 있었다. 정말 믿었던 사람이라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몰려 나의 노동에도 지장을 줄 정도였다. 하지만 상대는 단 한 번도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지 않았다. 이 쪽에서 먼저 연락을 취했을 때 그때서야 카카오톡으로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던졌다. 물론 그 말은 “송구하다”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당연히 괴로움은 내 몫이었다.

 

사건사고가 빈번한 한국에서 유독 애도의 언어로 빈번하게 사용하는 게 바로 ‘미안하다’ 라는 단어다. 세월호가 그랬고 강남역 살인사건이 그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가 그랬다. ‘나’라는 개인이 “가만히 있으라” 라며 승객들을 놔두고 도망간 선장도 아니고 골든타임을 놓친 해경이 아님에도 그저 미안했다. 나는 우연히 살아남아서 미안함과 분노로 강남역 살인사건의 피해자를 애도했다.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세상을 떠난 젊은 노동자에게 실질적으로 사죄해야하는 건 열악한 노동조건을 제공한 서울메트로 측이지만 우리는 sns를 통해, 혹은 직접 구의역에 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애도했다.

 

이렇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어렵지 않은데 한 나라를 쥐락펴락 했던 사람들 입에선 이 말 한마디 나오는 게 쉽지가 않은가 보다. 나는 아무리 정권이 바뀌고 제도가 바뀌어도 진짜 변화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이 잘못을 인지하고 인정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이건 저 위정자들 뿐 아니라,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에도 해당된다고 본다. 미안하다는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는 사회야 말로 좀 더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

 

폭염으로 노인분들이 힘드실까 걱정이고, 폭우로 농민분들이 밤잠을 설치시진 않을까 고민이 깊은 여름이다.

 

△최진영 감독은 영화 〈반차〉 〈뼈〉를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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