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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레일에게 익산시민과 역사는 없었다

▲ 엄철호 익산본부장
전국에서의 위안부 소녀상 건립 소식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서울 종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서 시작한 건립 붐이 전국적으로 급속 확산되는 형국이다. 위안부 피해자가 없는 지역까지 앞다퉈 제막식과 이벤트를 열고 있으니 건립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쉽게 짐작된다.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형상화 한 조형물이다. 거칠게 뜯긴 단발머리 끝은 가족과 고향과의 단절을, 닳고 해진 맨발은 험난했던 인생을, 땅을 딛지 않은 뒤꿈치는 내 나라에서조차 온전히 발을 붙이지 못한 한(恨)을 담고 있다.

 

그 소녀상에는 평화가 따라붙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당한 한 시대의 희생자들을 통해 진정한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의미다.

 

무릎 위에 주먹은 꽉 쥐어져 있다. 일본의 진심 어린 사죄를 받아 내겠다는 의지다.

 

작은 새는 어깨 위에 앉아 있다. 평화와 자유를 상징한다. 단발머리 앳된 소녀의 고통을 통해 우리 역사의 과거와 현재, 나아가 미래를 잇는 연결고리가 지금 전국 방방곡곡에서 세워지고 있는게 바로 소녀상이다.

 

소녀상이 익산역 광장에도 건립된다.

 

익산지역 9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익산 평화의 소녀상 건립 시민추진위원회’가 온갖 노력과 열정을 쏟아낸 성과다. 사실 소녀상이 익산역에 설치되기 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난관은 장소 선정을 둘러싸고 벌인 코레일 전북본부와의 힘겨루기 였다.

 

익산역은 일제강점기인 1912년에 세워진 수탈의 현장이다. 익산지역 젊은 청년들이 강제 징집되어 전쟁터로, 그리고 어린소녀들은 영문도 모른 채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기 위해 강제로 열차에 태워졌던 우리민족 고난의 현장이나 다름없다.

 

추진위가 소녀상 건립을 위한 최적의 장소로 익산역을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코레일의 생각은 달랐다. 역사적 배경과 의미는 차치하고, 오로지 고객들의 이동 동선 불편과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 완강하게 거부했다.

 

정헌율 익산시장까지 나서 입장 선회를 촉구하는 협조 공문 발송과 함께 대시민 촉구 서명 동참에 나섰지만 코레일은 돌부처 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코레일이 말하는 사회적 공감이 어느 나라, 어느 사회의 공감대인지 정말 궁금했다. 급기야 익산역 소녀상 건립이 자칫 물건너 가는것 아니냐는 우려로 이어졌다. 팽팽한 줄다리기만 거듭되던 상황에서 지난 26일 정치발 희소식이 날아왔다. 코레일이 입장을 급선회해 익산역 소녀상 건립을 허용키로 했다는 내용이다. 무척이나 기다렸던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뒷 맛이 영 개운치 않다. 익산역 소녀상 건립을 전격 수용한 배경에 힘(?)의 논리가 작용했다는 얘기가 솔솔 들려온 탓인지 모르겠다.

 

이춘석·조배숙 국회의원 등 정치권이 본격적인 압박에 들어가자 마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는게 소문의 줄거리다.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공감대 형성 등을 운운하며 익산시민의 염원을 아예 깔아 뭉갰던 코레일이 정치권 압박 하루만에 공감대 형성으로 돌변을 했다고 하니 이 어찌 통탄 할 일이 아니겠는가.

 

익산시민들의 염원을 말 장난으로 우롱한 이중적인 행태에 분노감이 치밀어 오른다. 그들에게 익산 시민은 분명 없었고, 역사 앞에 진실하지도 못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니 억울해 할것도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아무쪼록, 평화의 소녀상 건립은 평화와 전쟁 반대, 보편적 인권 가치 실현, 올바른 역사를 알리기 위한 시작점이다. 익산역 소녀상 건립이 전국 방방곡곡의 역으로 확산돼 친일청산과 역사의식 고취의 좋은 선례로 회자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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