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청산·단절 대상 아닌 / 계승·발전시켜 나가야 할 / 국민의 소중한 자산 아닌가
“송도를 지나 만월대를 보라. 반쪽짜리 기와인들 남아있더냐. 주춧돌 하나 남아있더냐? 고려의 궁궐이 무슨 병화(兵火)에 탔다는 전설도 없는데 어찌하여 이 같이 무정한 폐허만 남아있단 말이냐? 백제의 유물도 찾을 수 없고, 고구려의 옛 형태도 볼 수 없구나.”
구한말(舊韓末) 역사학자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단절의 역사에 통한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후에 일어난 왕조가 앞 왕조를 미워해 역사적으로 자랑할 만한 것은 무엇이든 파괴하고 불사라 없애 버렸다. 신라가 흥하자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 역사가 파괴되었다, 고려가 일어나자 신라 역사가 소멸되었다. 조선이 흥하자 고려 역사가 흔적도 없이 파괴되었다. 신채호 선생께서는 이런 모습을 보시고 “역사에 영혼이 있다면 처참해서 눈물을 뿌렸을 것이다.”라고 통탄하셨다고 한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것처럼 반지를 끼고 권좌에 앉으면 누구나 오만해지기 때문일까. 자기를 드러내고 싶고, 과시하고 싶고, 차별화하고 싶고…, 이 점 때문에 해방 후 역대 정권도 전임 정권을 모두 부정했다. 장면은 이승만 정권을 독재정권이라고 부정했고, 박정희는 장면 정권을 무능정권이라고 부정했다. 김영삼은 박정희 정권을 군사독재정권이라고 부정했고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을 반란·뇌물 정권이라고 부정했다. 김대중은 김영삼 정권을 국가를 부도낸 정권이라고 부정했고, 이명박과 박근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면서 부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부정하는 것도 모자라 앞 정권에서 추진했던 박정희 탄생 100돌 기념우표, 사드, 국정역사교과서, 신고리 원전 5·6호기, 4대 강 16개의 보 등 국책사업까지도 부정하면서 뒤엎고 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자. 과연 역대 정권이 부정의 대상인가.
이승만이 아니었다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가능했겠는가. 박정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빠른 빈곤 탈출이 가능했겠는가. 노태우가 아니었다면 남북 동시 유엔가입과 소·중 그리고 동유럽권과의 국교 정상화가 조기에 가능했겠는가. 전두환이 아니었다면 3%대의 물가 억제와 연평균 10%의 경제성장이 가능했겠는가. 김영삼이 아니었다면 공직자의 재산공개와 금융실명제가 가능했겠는가. 김대중이 아니었다면 평화적 정권교체와 첨예했던 남북 간 적대관계 완화가 가능했겠는가. 노무현이 아니었다면 권위주의 타파가 가능했겠는가.
역사는 청산과 단절의 대상이 아니라 계속 존중받아가면서 이어가고 발전시켜야 할 우리 국민의 소중한 자산이 아닌가.
제2차 대전 후 해방된 140여개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처럼 눈부시게 발전한 나라가 몇이나 되는가.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유일할 것이다. 전 세계에서도 아일랜드를 제외하고 그 유례가 없을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전임 정권을 부정하던 역대 정권의 적폐를 청산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우리 민족이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온 위대한 민족이고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것에 대해 한없는 자부심과 무한한 자긍심을 갖도록 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적폐 청산은 고사하고 역대 정권보다 적폐를 더 두텁게 쌓고 있으니. 지하에 계신 신채호 선생의 눈에서 더 굵은 통한의 눈물이 흘러내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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