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 발전이 모여 건강한 권력 이룰 때 진정한 선진국 도약
꽃샘추위가 만만치 않다. 미세먼지와 황사의 습격도 그치질 않는다. 봄날은 따스한 햇살과 함께 맑은 공기에 실려오는 꽃향기에 취하는 날이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하니 안타깝다.
4월에 때 아닌 눈까지 내렸으니 봄이 와도 진짜 봄이 온 것 같지 않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나라를 제 곳간으로만 알고 정권을 돈 버는 수단으로만 알았던 이의 말로도, 청와대를 사적 소유물로 알고 아버지의 영혼에 기대어 꼭두각시 생활을 영위하던 이의 말로도 여전히 어떤 이들에게는 교훈이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대통령을 지낸 이들은 살아서 나오지 못할 수준의 범죄로 갇혀 있는데, 그 대통령을 등에 업은 채 재산을 불리고 자리를 챙기던 이들은 희한한 궤변을 토하며 여전히 거리를 활보하고 외국으로 날아다닌다. 정말 우리에게서 독재의 겨울은 확실히 떠나간 것일까.
지난 시절의 더러운 권력이 각성한 시민들이 끝내 꺼뜨리지 않은 촛불로 응징을 받았다면, 우리는 이제 새로운 권력과 민주주의의 모습을 고민해야 할 때다. 개헌이든 개혁이든 주권자의 각성이 없다면 새로워질 것은 없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진리를 다시 확인했다면 우리 손으로 올바른 권력의 모습을 더 치열하게 다듬어야 할 때다. 그 핵심은 누가 뭐래도 나누고 낮추는 데 있다. 집중된 힘을 나누고 위에서만 놀던 힘을 끌어내려야 한다. 지방분권의 중요성을 말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중앙집권체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왔다. 상행 하행이라는 관용어가 그렇고 중앙과의 연계를 통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토호들의 몸부림도 그렇다.
중앙의 고관이라며 거들먹거리는 이들은 젊은 시절 근무했던 어느 지방의 후한 인심과 자신에 대한 호의를 자랑하며 뿌듯해 한다. 삶의 터전을 확실히 중앙에 잡았다 자부하는 이들일수록 지방의 현실을 그저 꿈에서도 아련하게 떠올리는 아름다운 추억 정도로 치부한다. 그들에게 지방은 영원히 베풂의 대상이고, 지방에서 바라보는 자신의 위치는 여전히 선망의 대상이라 믿기에 더욱 그렇다.
고속철도의 대중화로 한 두 시간이면 닿는 서울이 된 이상, 중앙과 지방을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는 이들도 있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자꾸 구분짓는 일을 하지 말라며 짐짓 눈을 부라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 철도와 도로가 ‘고속’으로 빨아들이는 돈과 사람의 모습은 애써 외면한다. 중앙의 화려함을 바라고 자발적으로 날아드는 불나방을 어찌할 거냐며 그저 혀를 차댈 뿐이다.
이래서는 안 된다. 언제까지 그럴 수도 없다. 지방자치란 삶의 터전이 어디에 있든 문화의 혜택을 골고루 누리고 교육과 직업 및 소득의 격차를 두고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일구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지역마다 고유의 문화를 자랑하며 여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사람을 낳아서 서울로 보내지 않아도 충분한 성취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나라가 진짜 잘 사는 나라인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아이들의 키높이에 눈을 맞추는 것만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상징이 될 수는 없다. 권력기관의 개혁도 결국 나누고 낮추는 데 그 핵심이 있다.
결국 주권자가 주인이라는 헌법의 기본을 제대로 구현하는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새나라는 중앙권력에 꿀리지 않는 멋진 지방분권의 시대를 열어가야 완성된다. 지방의 발전이 모여 건강한 권력을 이룰 때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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