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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기회 빼앗는 어느 뺄셈 평등

▲ 김창곤 전북대 산학협력단 교수
누가 떠들어도 듣지 않는다. 이번에도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3선에 도전한 김승환 교육감 후보 얘기다. 자사고 불합격자를 평준화 지역 일반고에 배정하지 않겠다던 그의 방침이 선거 공약이 됐다. 그는 자사고에서 떨어진 학생을 일반고에서 받아주면 특혜라며 ‘특권 교육 폐지’를 약속했다.

 

그는 “일반고 지원자에겐 기회가 한 번인데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라고 기회를 두 번 주면 형평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이는 기계적 평등관에서 비롯된 뺄셈 논리의 전형이다. 자사고 지원 기회는 수험생 모두에게 열려 있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겐 더 열심히 하라고 장학금을 주기도 한다. 특혜니 특권이니 하는 말을 아무 데나 붙이는 게 아니다.

 

김 후보는 시책을 같이 하는 경기·충북·강원·제주를 우군으로 내세워 설득하려 한다.

 

이 역시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서울·부산에서 인근 광주·전남까지 13개 시·도는 자사고·외고·국제고 탈락자를 평준화 지역 일반고에서 받아주기로 했다. 정원 외로 2~3%까지도 더 받겠다는 시·도만 3곳이다. 정부의 자사고-일반고 입시 일원화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 고심 끝에 내놓은 처방들이다. 13개 시·도에도 ‘진보’를 자임하는 교육감은 여럿이다.

 

자사고를 없애겠다는 김 후보의 ‘신념’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올 게 뻔하다. 전북의 자녀가 상산고에 못 가면 서울 등 다른 지역 아이가 더 많이 가게 된다. 상산고는 ‘지역 인재 전형’으로 정원의 25%(90명)를 선발해, 전북 학생은 비교적 쉽게 입학했다. 수월한 교육을 위해 상산고가 땀 흘려 일궈온 교육 터전에 전북의 자녀가 이제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것이다.

 

김 후보의 자사고 말살 방침은 소송에 걸려 있지만 득표에선 유리할 수 있다. 대립각이 날카로우면 지지 세력이 쉽게 규합된다. ‘평등 교육’의 회오리 속에 적지 않은 유권자가 자사고에 비(非)우호적일 수 있다. 김 후보뿐 아니라 다른 후보도 자사고 폐지에 동의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수 있다.

 

모든 정책에는 명암이 있다. 획일화된 ‘공장식 교육’이 불러온 ‘교실 붕괴’의 폐해를 덜기 위해 김대중 정부가 어렵게 도입한 게 자사고였다. 자사고는 수월한 교육을 위한 숨통이었다. 입시의 폐해도 있었지만 수월한 교육은 나라를 일으킨 1등 공로자였다. 인재 육성은 고금동서 모든 세대에 걸쳐 내일을 위한 공통 책무였다.

 

홍성대 상산고 이사장은 ‘수학의 정석’으로 어렵게 모은 사재 1000여억원을 인재 육성에 쏟아부었다. 6·25 때 혈혈단신 월남해 주린 배로 주경야독하며 자수성가한 뒤 가난한 모교를 인수한 이가 손태희 남성고 이사장이다. 고(故) 이종록 군산중앙고 설립자 역시 전후(戰後) 폐허가 된 고향 교육 재건에 앞장섰던 선각자였다. 특권이나 사익(私益)을 챙기려 세운 학교들이 아니었다.

 

다양성과 개방성은 교육의 기본 요건이다. 시민과 인재를 기르는 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해선 고통을 견디며 때론 경쟁해야 한다. 이웃을 배려하는 열린 마음과 함께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을 통찰하는 능력도 키워야 한다. 교육감은 그런 교육을 가장 잘 수행할 사람이어야 한다. 경쟁을 막겠다며 선택 기회를 빼앗는 평등 교육이야말로 진보 아닌 수구 이념의 파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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