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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길은 길을 만든다

이선옥(시인)

그림=신보름
그림=신보름

 적상산을 넘어 날아가는 새무리들이 구름바다를 가로질러 날아간다. 바람이 내어 놓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그랬다. 저 새들처럼 내가 이곳 포내리로 날아와 둥지를 틀고 자녀들과 남편과 함께 벌써 40년이란 길을 걸어왔다.

아스라이 먼 것 같아 보이던 길은 내 앞 가까이 있었다. 처음 이곳 포내리에 올 때만 해도 버스는 먼지 자욱하게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30분 넘게 달려야만 도착하는 마을이었다.

아버님 생신날에 맞추어 왔던 날. 버스는 그렇게 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투덜거리고 왔다. 아스라이 멀어지는 듯 가까운 산길을, 아니다, 굽이굽이 돌아서는 산들이 나에게 왔다가 멀어지고 멀어졌던 길은 또 내 앞에 가르마를 가르듯 나타났다.

어느 곳이든 시골은 내 유년 시절 마을과 잇닿아 있고 닮아 있었다. 사람 살아가는 곳이 다 닮아 있는 것일까. 유년 시절 오르던 야트막한 산등성이도 당산나무도 어쩜 이리도 닮아 있는지 고물고물 몰려 있는 초가집과 싸리대문과 싸리 울타리 돌담들….

고샅길에 맨발로 뛰어나오신 어머님의 환한 웃음과 동네 어르신들의 웅성거림이 내 귀에 여울지게 들리던 그리운 음성들. 자작거리며 매운 연기를 내뿜던 부엌 아궁이 속을 한없이 바라만 보던 그 그리운 불꽃들. 그렇게 느리게만 흘러가던 시간들이 길을 내고 그 길 위에 내가 아프게 서 있다. 살아온 날들의 아픔이다.

행복하게 살아온 날도 아프게 앓아야 했던 흔적들이다. 몸부림치며 살아온 날도 아프게 앓아온 면역들이다.

지금 적상산이 바라보이는 곳 마을 포내리에서 그리운 것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다가온다. 어린 신부로 견딘 날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나에게 듣고 싶다.

세상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기 위하여 조금씩 마음의 길을 내고 누군가 나에게로 오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 남자와 함께 작은 텃밭에서 과일나무를 심고 채소를 가꾸고 마음에 묻어두었던 것들을 땅에 심는 날은 참으로 힘들었다.

40년 동안 적상산 자락에 발을 뻗고 뿌리를 내리는 동안 작은 바람으로 기다려온 희망이 조금씩 우리에게 길을 내고 왔으면 좋겠다.

느리지만 아프지 않게 산골에서 살아내는 일이 어느 것 하나 만만한 일은 없었지만 지금 산등성이를 넘어 천천히 걸어 내려오고 있는 길이다.

10년 전 사업으로 조금 기우뚱했지만 서로가 의지하며 잘 견디어 왔음은 보이지 않게 도우시는 그분의 사랑임을 안다. 우리는 또 이렇게 슬픔의 길을 지우며 걸어가고 있다. 길은 우리가 닦아 놓은 나의 앞을 먼저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된다고 믿는다. 길을 걸어왔으므로, 가는 길도 내가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된다.

먼지 자욱하게 달려왔던 길에서 이제는 잘 닦여진 아스팔트길을 달려 나가게 되는 것, 그 길에서 나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이선옥(시인)
이선옥(시인)

*이선옥: 『창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아직도 사랑은 가장 눈부신 것』을 냈다. 글벗회원, 무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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