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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작가회의와 함께하는 전라북도 길 이야기] 천장 - 장용수

그림=신보름
그림=신보름

“우리 그만해요, 이제!”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면서 말했다. 그녀의 어깨 너머로 붉게 노을이 타고 있었다. 나는 6개월째 무직자였다. 그녀는 내가 앞으로도 무직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녀는 직감 능력이 뛰어난 여자였다. 당시 나는 굶어 죽지만 않는다면 한동안 일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뭐라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물론 직장이라는 곳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그러나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는 사무실 안에 앉아 있으면 서서히 어디선가 생고무 태우는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간신히 오전을 넘기면 생고무 탄 냄새 때문에 점심식사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속이 뒤집어졌다. 그 냄새 때문에 머릿속 뇌수들이 모두 회반죽처럼 걸쭉하게 변해 버려 이것과 저것을 가지런하게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도 사라져 버리곤 했다. 그쯤 되면 더는 견딜 수가 없었다. 유일한 해결책은 응급조치를 하듯이 소주를 반병 정도 마시는 방법밖엔 없었다.

“참, 어지간허다. 그런데 술 마시는 변명치고는 좀 시적이다. 이걸 글로 한번 써 보는 건 어때?”

문청이었던 술친구의 제안. 그 친구의 제안 때문이라기보다는, 술을 좀 줄일 수 있는 대책이 필요했다. 불면에 시달리던 어느 날 친구의 말이 떠올라 뭔가를 쓰기 시작하기는 했다. 그 뭔가는 처음에는 넋두리로 시작되어 그녀에게 나의 상황을 설명하고 나를 이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변질되었다가 청혼을 위한 로맨스가 되었다가 다시 신세 한탄이 되었다가 급기야는 신을 저주하는 울분이 되었다가 다시 자조적인 신세 한탄으로 추락하곤 했다. 그러나 글을 쓰고 정리하는 것에는 일정한 관점과 의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곁가지를 쳐내고 그녀에게 나의 상항을 설명하고 청혼을 하는 형식으로 글을 정리하고 있었다. 글의 마무리를 유예하고 있었던 것은 불면의 밤이 짧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조차 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결혼이라는 실제적인 생활은 자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포기할 만큼의 용기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를 이제 그만 좀 놔줘요. 난 그냥 평범한 남자 만나서 평범하게 결혼해서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난 입안이 써 술잔을 거푸 마셨다. 그리고 결국 취해 버려서 그녀에게 추접스러운 간청을 하다가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그녀를 다시 만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녀가 마침내 일어났다. 그녀 어깨 너머로 바라다 보이던 흐릿한 세상이 깜깜해졌다. 블랙아웃!

맹렬한 추위에 눈을 떴다. 전주 덕진공원 벤치 위였다. 누가 덮어 주었는지 신문지 몇 장이 덮여 있었고,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순간 울렁증이 일어 급하게 토하고 나자 벌떼 같은 추위가 엄습했다. 얼마나 웅크리고 잤는지 목과 허리는 굳어 버린 것 같았다. 돌덩이처럼 차가운 몸. 가을이 끝나가고 있었다. 다시 술이 생각났다. 그녀를 생각하자 다시 무딘 칼로 연한 살을 서서히 긁어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쓰던 편지를 찢어 버렸다. 그리고 오랫동안 계획했던 여행을 실행하기로 했다. 곧바로 비행기 티켓을 샀다. 중국으로 들어가 티베트를 거쳐 인도까지 갈 작정이었다. 다시 되돌아오는 여정까지는 생각지도 않았다.

중국의 거얼무에서 티베트로 넘어가는 천장공로는 아득했다. 그곳을 몇몇 일행과 함께 나는 랜드크루저를 타고 넘었다. 삼천과 사천오백의 고도를 넘나드는 산악의 길엔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았다. 나는 호흡을 고르게 하려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으나 날숨의 뒤끝은 간신간신했다. 고산증에 시달리느라 머릿속은 몽롱했고 문득문득 해독할 수 없는 이명이 들렸다. 문득 유년 시절의 고통이 너무 생생하게 되살아나 아이처럼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엄마, 도대체 왜 날 낳았어?”

티벳은 이미 겨울이었다. 그리고 산악의 길들은 끝이 없었다. 벼랑을 돌아서고 계곡을 가로지르며 길은 끝없이 몸을 뒤틀었다. 정수리를 가르는 칼바람은 코끝에서 맵싸했다. 계곡을 훑으며 내려오고 올라가는, 아찔한 바람들은 문득 한 덩어리로 뭉쳐 산악을 후리치며 흩어졌다.

그 막막한 산악의 길을 몸으로 열어가는 수행자가 있었다. 수행자의 모습은 초라했다. 수행자는 오 척 단신의 몸에 누더기 같은 붉은 가사를 입은 채로 빙판길 위에 무릎을 꿇었다. 무릎을 꿇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번에는 길바닥에 배를 붙이고, 손으론 언 땅을 쓸어안으며 이마를 얼음이 뒤덮인 길 위에 밀착시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해야만 가능한, 파충류의 그것과 유사한, 가장 더디고 정직한 길 읽기, 오체투지였다. 강렬한 자외선에 노출된 그의 피부는 그가 입은 붉은 가사보다 더 붉게 타들어가고 있었고, 그의 눈썹과 수염에는 땀방울 같은 고드름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그의 오체투지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가기 위함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그의 오체투지는 진화의 시간을 거슬러 가는 듯했다.

차창 밖의 산들은 만년설에 뒤덮여 있었다. 눈 덮인 산악의 길들이 이어지다가 믿을 수 없이 황량한 사막이 펼쳐져서 낯선 행성 같은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 압도적인 풍경 속을 붉은 가사를 입은 티베트인 수행자들이 전설처럼 오체투지로 길을 열어 나갔다. 수행자들이 오체투지로 도달할 간절함의 끝이 어디인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의 길은 그를 중심으로 순간 태어나고 순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산악의 까마득한 산등성이 위에서 야크들은 칼바람을 맞으며 수행자를 묵연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리가 탄 지프는 눈길 위에 타이어 자국을 남기며 수행자들을 앞질러 나갔다. 그렇게 산악의 길을 넘어 라사에 도착했다.

티베트 사람들은 늘 마니차를 돌렸다. 라사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뱅, 뱅, 뱅, 돌리는 마니차를 볼 때마다 나는 어지럼증을 느꼈다. 마니차를 돌리기만 해도 불경을 읽는 효과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그러나 마니차를 돌리는 두루뭉술한 대승불교의 원리가, 라사의 사원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오체투지를 하며 밀어 올리는 열망이, 그 간절함에도 불구하고, 무참한 중국의 총칼을 막아내진 못했다. 티베트 수도인 라사도 상권을 장악한 중국인들에 의해 허물어져가고 있었다. 영혼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던 포탈라 궁 앞에는 중국인 혁명 기념탑이 서 있었고, 그 주변은 이미 중국의 환락가로 변해가고 있었다.

며칠 전에도 티베트의 자유를 외치며 승려 하나가 분신했다고 들었다. 벌써 100명째라고 했다. 문득 오체투지로 라사를 향해 간다던 수행자가 떠올랐다. 그가 길 위에서 얼어 죽지 않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창을 한다고 했다. 천장? 가이드가 그 단어를 처음 설명해주었을 때 그 단어에 매혹이 되어 버렸다. 무언가 숭고하고 아름다운 장례의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천장터는 사천고지에 자리한 사원의 뒤편에 있었다. 하늘과 땅이 만나는 가파른 천장터까지 시신은 가족에 의해 옮겨졌다. 풀 한 포기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사천고지의 산 위까진 구름도 감히 오르지 못했다. 멀리 히말라야 산맥의 주봉인 신성한 초롱라마가 만년설에 뒤덮여 있었다.

가족들이 망자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그러자 라마 승려가 집착할 것 없는 짧은 생의 덧없음을,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돌아갈 근원의 자리인 공(空)의 세계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진언 소리는 날 선 바람이 토막을 내었다. 승려가 물러나자 천장사가 나섰다. 그는 도끼날로 두어 번 시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곧 쇠 하나가 흙과 물, 불, 바람 사이를 가르며 지나갈 것임을 예고했다. 그리고 천장사는 고원지대의 희박한 공기층을 가르며 도끼를 날렸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머리와 팔, 다리가 몸에서 분리되었다. 관절을 제대로 파고든 도끼날에 팔은 한 번에 떨어졌지만 목과 다리는 몇 번의 수고가 더해졌다. 몸에서 떨어져나간 머리와 팔, 다리는 분해된 인형 그것처럼 느껴졌다. 천장사가 이번에는 칼을 질러 몸속의 장기를 하나씩 꺼내 놓았다. 묵직한 비린내와 함께 한 번도 개봉된 적 없는 순결한 속살들이 햇살 아래 꽃처럼 피어났다.

푸른 하늘가에는 피 냄새를 맡은 검은 새들이 모여들어 허공을 맴돌았다. 사신들이었다. 머리와 팔, 다리, 그리고 햇살 아래 드러난 장기들은 망자가 살아 있음을 유지하기 위해 씹어 먹던 야크나 산양의 그것과 다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천장사가 언덕을 내려오자 검은 새들이 흐벅지게 붉은 꽃들이 피어난 자리에 엉겨 붙었다. 지상의 것들을 먹고 키운 몸은 그렇게 검은 새를 따라 하늘로 올라갔다.

망자의 가족이나 승려들은 모두 돌아갔다. 시신의 살을 다 발라 먹은 검은 독수리들도 떠났다. 그리고 까마귀들 몇 마리만 망자의 부서진 뼈마디 사이를 쪼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육신도 결국 이렇게 분해되어버릴 수밖에 없으리라. 그녀의 연꽃 같은 가슴도 저와 같이 분해되어 결국 흙과 물과 바람으로 흩어지고 말 것이었다. 가이드가 재촉하는 바람에 더는 천장터에 머물 수가 없었다.

“티베트에는 나무가 없어 화장을 할 수도 없고, 시체를 묻어도 얼어서 썩지 않아서 천장을 합니다.”

라사 맥주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시원한 맛이었다. 천장을 안내해준 가이드, 그리고 같이 천장을 참관했던 노년의 영국 여인과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중국식당에 들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가이드는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노년의 영국 여인과 나는 본격적으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입안에서 알 수 없는 비린 맛이 느껴져서 맥주를 계속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비가 걱정이 되어서 그녀에게 서툰 영어로 양해를 구했다.

“당신은 오늘 내 술값을 지불해 줄 수 있어요?”

“왜?”

“나는 배낭 여행자이고 인도까지 여행을 할 생각인데, 여유가 거의 없어요.”

“그건 네 사정이고, 왜 내가 너에게 한턱을 내야 하는지 설명을 해봐.”

“혹시 나에게 원하는 게 있습니까?”

“그럴 리가 없잖아. 너와 난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그녀는 말은 그렇게 해도 입가에 엷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러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럼, 내 손가락을 하나 팔게요.”

“별로 맛은 없을 것 같은데.”

그녀는 웃었다. 시간의 건너편에서 그녀는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시간 속에서 고독하게 사위어온 여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 속에서 문득 그 사람의 일생이 보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다. 눈가에서 곱게 흘러내린 주름살과 다르게 그녀의 눈빛은 깊고 어둡고 축축했다.

그녀는 내 주순에 맞게 쉬운 단어와 짧은 문장을 사용했다. 그리고 내가 이해를 하지 못하면 몸동작을 사용해서 요령 있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해 주었다.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그녀의 말을 70%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 정도면 대단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녀는 같은 영국인과 이야기해도 50% 미만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30% 미만으로밖에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지 못하고 산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한국에서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티베트에서는 남자 두 명이 한 여자와 결혼하는 풍속이 있는 거 알아?”

그녀의 말에 의하면 티베트의 기후 환경 때문이라고 해다. 티베트는 긴 겨울과 짧은 여름 때문에 밀이나 보리 같은 작물밖에 재배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만으로는 가족을 부양하기 어렵다는 것. 해서 남자 한 명은 식구들의 식량을 해결할 수 있는 농사를 짓고, 다른 한 명은 도시로 나가 장사나 다른 돈사는 일을 해서 아이들의 학비와 살림살이를 할 수 있는 돈을 번다는 것. 그리고 도시로 나간 남자가 일 년에 두어 번 집으로 돌아오면 나머지 하나는 잠자리를 양보하고 잠시 자리를 비켜준다는 것이다.

“슬픈 이야기네요! 한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네요.”

“아름다운 이야기지! 욕심 때문이지! 어쨌든 이기적인 인간들은 가족을 만들지 않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그럼, 나 같은 사람은 결혼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가족을 만들면 그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남자들은 무슨 짓이든 다 하잖아. 그게 미덕처럼 여겨지는데 그게 세상을 망치는 거야. 자기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비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거야.”

“그럼, 남자들은 뭘 위해서 살아야 하죠?”

“바보같이… 그걸 왜 나에게 물어?”

2017년 여름, 덕진공원에 갔다. 그리고 20대 후반, 술에 취해 잠들었던 그 벤치에 앉아 보았다. 흔히 공원에서 볼 수 있는 나무 벤치였다. 여기 저기 칠이 벗겨진 자리가 까맣게 변색된 채 사위어 가는 벤치. 20년 전 그 벤치였는지 모르겠다. 아무려나, 오늘 밤 추억에 젖어 여기서 잠들면 모기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것이다. 이곳의 풍경은 언제나 주말 오후처럼 한가롭다. 연못 주변의 산책로를 따라 오래된 포플러 나무들과 아이스크림 판매대, 놀이터, 화장실, 기념비들이 늘어서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난 중·고등학교 때 이곳으로 소풍 나온 여공들을 꼬시러 오곤 했었다.

연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었다. 그녀의 붉은 가슴 같은 연꽃. 그녀가 원하는 대로 성실하고 다정한 남자를 만나서 아이들 낳고 잘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녀가 원하는 삶일지, 아니면 이십 대의 초조함을 이기지 못해 결국 남들처럼 결혼으로 도피하고 싶어 했던 건지, 그도 아니면 단지 나를 피하고 싶어 했던 건지 알 길이 없다. 이제 나는 그녀가 세속에 환멸을 느껴 머리를 깎고 수도를 하다가 환속해서 술집 주모가 되었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나이가 되어 버렸다.

“젊은 친구, 길을 갈 때는 바닥을 보지 마. 그렇게 걸으면 시간이 반대로 흐르거든. 가장 좋은 것은 그저 눈앞의 풍경을 즐기는 거야!”

티베트에서 만난 영국인 할매가 헤어지면서 한 말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백 달러짜리 석 장을 주었다. 그때로서는 거절할 엄두가 나지 않아 덥석 그 돈을 받았다. 그리고 티베트의 라싸에서 장무를 거처 네팔의 카트만두, 포카라를 찍고 인도를 갔다. 빳빳이 고개를 들고 걸어서. 그리고 마침내 인도의 바라나시에 도착했었다. 돌아올 계획이 없는 여행이었지만 어쩌다 보니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가 다시 떠나기를 반복하는 삶이 되어 버렸다.

지금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골목길을 떠돌고 있다. 밥벌이는 하고 있지만 아직 생고무 타는 냄새를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간섭과 경쟁이 덜한 일을 찾아서 그럭저럭 견딜 만해졌다. 그래도 견딜 수 없는 날들은 있기 마련인데, 그런 날이면 티베트의 고지대에서 만국기같이 나부끼던 타르초들을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내 코끝을 간지럽히는 바람이 설산의 타르초를 읽고 온 바람이라는 느낌이 확연한 날은, 술을 마시지 않아도 기껍다.

*장용수: 2001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소설·필명 장용석) 당선. 현재 말레이시아 말라야대학교 아시아유럽어학과에서 한국어 교수로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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