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한쪽 귀퉁이가 움푹 파인 모양을 두고 입술이 째진 것 같대서 ‘째보’라고 불렀다고도 하고, 이 포구에서 객줏집을 했던 힘센 사내의 별명이 ‘째보’였는데 이로 인해 ‘째보’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선창에 섰다.
‘군산’ 하면 떠올리는 소설가 백릉 채만식의 『탁류』에도 이 째보선창에 대해 자세한 묘사가 곁들여져 있다. 일제강점기의 혼란한 시대 상황을 초봉이라는 한 여인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 역설적으로 풀어낸 그 소설.
채만식은 첫 장에 “이 강은 지도를 펴 놓고 앉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물줄기가 중동에서 남북으로 납작하니 째져가지고는 그것이 아주 재미있게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라고 썼다.
언청이라고도 낮춰 부르곤 했던 입술이 째진 이들을 본 적이 있는가. 지금은 얼굴의 장애를 그대로 놔두는 경우가 흔치 않지만 예전엔 입술 위쪽이 갈라진 상태로 질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흔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째보선창이 있었던 포구에 섰다. 이름과 기억, 그리고 아련한 추억으로만 떠도는 그 포구는 없고, 낮고 쓸쓸한 공영 주차장만 남아 있다. 그 곁에는 째보선창을 알리는 표지석과 안내판이 외롭다.
일제강점기엔 군산의 팔마재, 구시장 근처까지 물길이 닿았고 이 물길을 따라 질펀한 삶이 이어졌던 게 바로 째보선창이었다. 소설 『탁류』의 주인공인 정주사가 충남 서천의 전답을 팔아 초봉이 계봉이와 가족들을 이끌고 군산 땅에 처음 닿은 곳 또한 이 선창이며, 고은 시인의 어머니가 서천 친정을 떠나 미룡 용둔리로 시집올 때 군산에 첫발을 내디뎠던 자리 또한 여기이다.
흥망성쇠가 언제였던가. 그 사연 많은 사람들과 시간들은 간 곳 없고 물 빠진 선창에 잿빛 뻘만 남아 아스라한 그때를 굽어보고 있다. 오늘의 째보선창은 간데없는데 떠나지 못하는 갈매기만 남아 강기슭을 굽어보고 있다.
째보선창은 한때 군산의 다른 이름이었으며, “천 원짜리 지폐는 개도 안 물어 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흥청망청의 상징이었다.
어판장 한쪽에서는 매년 군산이 시끄러울 정도로 성대한 규모로 풍어제가 열렸다. 어선들의 안녕과 만선으로 돌아오라는 염원을 용왕님께 비는 풍어제는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그랬던 어판장이다. 하지만 어깨를 부딪쳤던 고깃배들이 어선 감축 사업으로 썰물 빠지듯 나가 버리자 지금은 폐허처럼 적막해졌다.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가 회고가에서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다’고 읊었듯이 선창은 그대로인데 사람의 흔적은 끊겨 버렸다. 참 허전하다.
포구나 선창에 서면 길 잃은 나그네의 마음처럼 여러 생각이 겹쳐서 온다.
채만식은 ‘탁류’에서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앉았다. 이것이 군산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어진다.”라고 표현했다.
그 말처럼 눈앞은 온갖 군상들을 휩쓸고 내려가는 금강이다. 바로 뒤는 군산 수산업의 흥망성쇠를 함께 굽어보았던 동부어판장 건물이다. 벗겨진 외벽에 대낮에도 컴컴한 안쪽, 마치 귀신놀이 하기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제 강점기엔 ‘전북어업조합 판매소’가 있었던 장소이다.
바라던 째보의 얼굴은 간 곳 없고 무상한 세월을 굽어보는 무표정한 시멘트 덧칠만이 덩그렇다. 바닷물을 잔뜩 머금었던 시멘트 길이어서일까. 약간 색이 바랜 듯하고 굵은 동아줄을 맸던 자리는 생채기가 나 있다. 순탄치 않은 인생길을 보는 듯 아리다.
눈앞은 시간이 게으르게 내려앉은 시멘트 길. 드문드문 펼쳐진 그 위의 인생살이들이 외롭고 쓸쓸하다. 언제나 흐드러진 웃음꽃이 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내밀고 찬찬히 살펴본다. 실개천을 따라 선창까지 흘러왔던 그 물길은 지금도 내항과 연결하는 수문을 거쳐 아귀와 같은 입을 벌리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탁류의 군상들을 이 강물이 쓸어 담아 줄 것을 작가 채만식이 바랐듯이 남겨진 이 선창은 낡은 모습으로 아스라한 추억을 사람들의 가슴에 남겨 주었다. 지난 세월을 지키고 간직하면서 산다는 건 어려운 선택. 그러나 선창은 그 험한 날들을 온몸으로 견뎌왔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드러난 상처는 시간이 아물게 하지만 가슴에 새겨진 흔적은 지우지 못하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
탁류와 함께 낡아져 갔던 것들이 눈에 밟혔다. 고기잡이배를 댔던 자리와 밧줄을 동여맸던 고리, 고기를 담던 나무 상자, 대나무 깃발, 스티로폼 부이 등등. 그들은 늘어졌고 숨은 깔딱이지만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지만 낡고 늘어졌다고 해서 사람마저 그런 건 아니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고깃배들은 사라졌지만 이곳은 수리할 게 있는 어선들에겐 엄마의 품과 같다. 뱃사람들은 지금도 이들의 인정과 기술과 선창 사나이들의 뜨거운 가슴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물고기가 회유하듯 그리운 뱃사람들의 귀향이 계속되고 있다.
강물을 바라보면 하염없고 어지럽다. 물이 들면 할 말 많았던 밑바닥 사연들까지 품 안에 거두어 주지만, 썰물이 되어 허연 속살을 드러내면 상황은 달라진다. 호시절이었을 때 끼룩끼룩 손에 잡힐 듯 날아들었던 그 수많던 갈매기들 또한 제 살길 찾아 떠나갔다.
강 안쪽에는 몇 마리 남은 갈매기들이 마치 텃새처럼 오가는 사람들을 굽어보고 있었다.
채만식은 그래서 “‘항구래서 하룻밤 맺은 정을 떼치고 간다’는 마도로스의 정담이나, ‘정든 사람을 태우고 멀리 떠나는 배 꽁무니에 물결만 남은 바다를 바라보면서 갈매기로 더불어 운다’는 여인네의 그런 슬퍼도 달코롬한 이야기는 못 된다.”고 표현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돌아오는 이들을 반기는 건 오래된 선박과 엔진 수리 업체들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심장과 같은 기계 부품을 고치고 갈아주는 일은 째보선창의 큰 일거리로 남겨졌다. 허술한 철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서 그라인더로 갈아내는 소리와 오색 빛으로 날아가는 쇳가루가 눈을 부시게 한다. 기름 냄새에 절어 있지만, 이 소리와 빛과 냄새와 외침이 이 안에서 사람이 살아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낡고 녹슬고 지쳐 쓰러져 있는 길 위의 닻과 폐 부품들을 보면서 동강난 째보선창의 이력을 떠올린다. 그리고 고은 시인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몇 년 전 어느 눈 내리는 날을 기억했다. 고은 선생은 먼눈으로 장항 쪽을 바라보았고, 그의 귀향을 감싸 안아주는 듯이 눈발은 하염없었다.
휘휘 고개를 좌우로 돌리면서 몇 걸음 더 가본다. 조개와 해삼, 그리고 갖가지 수산물을 가공하는 오막살이 포장마차 집이 난간에 위태롭다. 수협 중매인이 운영한다는 간판도 눈에 띈다. 이래 허접한 간판인데 장사는 얼마나 될까. 그러나 걱정 붙들어 매시라. 겉은 허접하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속은 꽃게가 알을 품었듯이 알차기가 그만이니 말이다.
허술한 간판을 달았거나, 허접한 출입구를 보고 돈 벌기는 글렀다고 생각했다면 그건 겉만 보고 속까지 판단하는 격이다. 그 안으로 들어가면 딴 세상이기 일쑤이다. 들어가 보면 우선 길게 쭉쭉 이어진 작업장에 건조장, 수족관, 세척장과 일하는 아줌마 등등 눈이 동그랗게 떠질 터이니 ‘걱정 뚝’이다.
채만식은 선창의 풍경을 “날이 한가한 것과는 딴판으로 선창은 분주하다. 크고 작은 목선들이 저마다 높고 낮은 돛대를 웅긋중긋 떠받고 물이 안보이게 선창가로 빽빽이 들이 밀렸다. 칠산 바다에서 잡아 가지고 들어온 첫조기(젓조기)가 한창이다. 은빛인 듯 싱싱하게 번쩍이는 준치도 푼다. 배마다 셈 세는 소리가 아니면, 닻 감는 소리로 사공들이 아우성을 친다. 지게 진 짐꾼들과 광주리를 인 아낙들이 장 속같이 분주하다.”라고 묘사했다. 딱 맞는 말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90년대 초반까지의 영화를 간직했던 군산 동부어판장과 째보선창은 그렇게 쇠락해갔다. 그러나 떠나고 돌아오는 고동 소리와 왁자한 아귀다툼이 없어졌다고 해서 오늘의 선창이 사라진 건 아니다.
생선을 다뤄주는 해산물 사업장과 선박들의 부품을 만들고 가공해주는 공업사와 수리점과 음식점 등 선창의 삶은 벗기고 벗겨도 속살을 한 번씩 더 내놓는 양파와 같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역설로 보여준다. 채만식의 『탁류』처럼 말이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주인공 정 주사가 서천의 논밭을 팔아 당도했던 째보선창, 그 선창을 따라 흔들흔들 걷노라니 기분이 착 가라앉는다. 풀죽 같은 갯벌처럼 흐느적거리고, 아련하고 아스라한 마음까지 들게 만든다.
강 하구의 안쪽, 커다란 수문을 바라본다. 쑥 내려간 난간 쪽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면 온갖 허드렛물을 쓸어 담고 내려왔던 복개천이 문을 열어두고 있다. 뻘밭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이다.
오래된 흔적은 시멘트 색깔에서도 나타난다. 말끔하게 분칠한 얼굴이 아니라 어두침침하고 어딘지 칙칙한 표정이다. 그 시멘트 선창길 바닥에 꽂아 놓은 묵직한 철 고리를 발끝으로 슬쩍 차본다. 아픈 건 내 발끝이지만 아련하고 쓸쓸하고 허전한 게 아픔을 타고 밀려들었다. 새까맣게 몰려들던 어선들을 고리에 걸어 두었던 굵은 밧줄은 먼 옛날이야기이다.
시멘트 부스러기를 툭툭 건드린다. 심심풀이 오징어 한 마리를 씹으며 걸어가는 째보선창, 바람도 오늘은 한가롭다. 그렇다고 속까지 한가로운 건 아니다. 아픔과 시련은 겹쳐 오듯이 이 선창의 깜깜한 앞날 또한 그렇다.
먼발치로 일제강점기 쌀 반출의 항구였던 군산내항이 눈에 들어왔다. 뜬다리 부두 근처에 언제인가 퇴역한 군함을 가져다 놓았다. 일제강점기 쌀 반출 항구에 안보 전시용 군함이라니. 올려다보는 햇살이 참 눈부시다.
여기서부터는 선박의 엔진과 스크루, 철제 구조물, 닻 등을 만들어주는 공업사들과 선외기 수리점이 즐비하다. 철제로 된 문을 내린 현대디젤 바로 옆엔 오랜 세월 자리를 지켜왔던 하꼬방만 한 가게가 아직도 문을 열고 있다. 시큼한 냄새를 어깨 뒤로 넘기면서 걸어가 보면 여수스크루, 현대 선외기 엔진, 동부공업사, 문일공업사, 광일스크루, 커민스, 대진고속 등이 세월을 비껴 선 채 나름 영역을 지키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직도 수산업의 뒤꼍에서 먹고사는 게 일이다. 오른쪽으로는 스산한 표정의 썰물 든 밑바닥이 허연 속살을 드러내 놓고 있다. 갈매기 몇이 개펄을 걸어 다니면서 먹이를 찾고, 그 옆을 긴 다리 백로가 눈을 끔벅거리고 있다.
배 떠난 선창의 오후는 늘 게으르다. 저 담벼락을 돌아 나가면 내항. 긴 이야기는 놔두고 소설 『탁류』와 함께 생겨난 길을 천천히 따라 가본다.
길은 길로 연결된다. 선창의 바닥은 울퉁불퉁이다. 숱한 세월 동안 이 선창으로 들어오는 어선들을 묶어 놓았던 철제 고리만 꼿꼿하다. 지난 시절, 그 자세를 지키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돌아보고 있자니 망가진 어선들이 눈에 밟힌다. 썰물 땐 그렁그렁하니 괜찮았었다. 그런데 물이 들어오자 반쯤은 물에 잠긴 채, 또 반쯤은 세상 시름 엎어놓은 듯 허벌렁하다. 애써 외면하며 한 걸음씩 천천히 걷는다.
수산물 가공을 해주는 경원수산 사거리, 어디선가 트로트 노랫가락 소리 유창하다. 들려오는 쪽으로 따라가 보니 ‘○○성인콜라텍’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예전엔 춤바람의 온상지로 지목되었던 무슨 카바레가 있던 자리이다. 카바레는 언뜻 좋은 이미지로 들리지 않는다. 마도로스 사나이들의 험난한 바다 생활을 잊은 여자들의 일탈의 장소로 불리기도 했던 때문이리라.
이런 선입견을 애써 누르면서 왼쪽으로 굽어져 돌아갔다. 서강기계 앞엔 길 가장자리에 거대한 철 구조물, 아니 쇳덩이로 만든 기계 장치가 놓여 있다. 웬만한 기중기로는 들기도 어려워 보이는 크기와 눈짐작되는 무게에 압도당한다. 들기도 어려웠을 텐데 어떻게 그걸 이 자리로 옮겨 왔을까.
공장 안에서는 쇳덩이를 갈아내고 용접해 붙이는 철공소 일이 한창이다. ‘씨앙’ 날카롭게 돌아가는 쇳덩이 갈아내는 소리 따라 불똥이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사람의 삶이란 이런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잘 자라난다. 언뜻 ‘형님!’ 하고 작업복 입은 남자가 부르자 소리도 들리지 않았을 텐데 부르는 쪽을 바라본다. 무슨 텔레파시가 통하고 있나?
‘서강기계’에서 바로 가지 않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중앙식당, 유락식당, 해성식당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길 가장자리에 생선을 담아 두었던 나무 상자들이 창고 옆에 그득하다. 식당들은 대부분 어장을 하거나 어업이나 도소매업을 같이 한다.
맛의 구 할이 결정된다는 좋은 생선을 쓰고 있으니 자연스레 맛집으로 소문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식당들은 대부분 주인네 인생과 함께 나이를 먹어 왔다. 그래서 이 골목의 식당들은 줄잡아 20~30년은 기본이다. 그것도 세대를 이어가고 있다. 면면히 이어 온 탁류 길처럼.
*채명룡: 1990년 시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 시집 봄봄, 시장 소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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