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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지켜온 역사적 공간, 생명의 숲이 되어야 한다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엄혁용 전북대학교 미술학과 교수

내가 사는 전주에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전주에서는 처음으로 전국체전을 유치하기 위해 시민들까지 한마음으로 나서 건립된 공간. 바로 전주 종합경기장과 야구장이다.

1963년 2월 착공된 전주 종합경기장은 전주시민들이 뜻을 모은 성금으로 건설비용을 만들었다. 지역의 건설회사가 참여하고 건축에 필요한 자갈과 모래는 전주천에서 가져왔으니 이 공간이야말로 의미 있는 역사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경기장은 전주가 꾸준한 도시 재편을 겪어오는 과정에서도 심장부의 위치를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그만큼 전주시민들에게는 상징적인 공간인 셈이다.

전주에서는 전주 종합경기장이 만들어진 1963년 이래 4회의 전국체전을 치렀고 함께 만들어진 야구장은 1990년부터 전주 최초의 프로야구팀인 ‘쌍방울’의 홈그라운드로서 역할을 하였다. 프로야구 경기가 열릴 때면 쌍방울 야구팀 모자를 쓴 수많은 청소년들이 경기장 근처에서 상기된 얼굴로 한껏 기대감에 부풀어 경기를 기다리던 때가 생각난다. 나도 쌍방울 경기를 보기위해 경기장을 찾아 환호하고 마음을 졸이며 응원했었다. 그때 그 감성을 기억하는 청소년들은 이제 30~40대 성숙한 청년이 되어 지역사회를 이끄는 세대가 되었을 것이다.

이제 전주 시민들이 기억과 감성으로 공유하는, 전주의 얼마 남지 않은 근현대유산인 그 종합경기장과 터가 활용도를 놓고 전주의 중요한 과제로 부상해있다.

재작년 학술대회 참석차 미국 뉴욕을 다녀왔다. 일정이 끝나고 뉴욕 맨해튼의 중심에 위치한 센트럴 파크를 방문했었다. 도심 속에서 느낄 수 없는 여유와 자유로움을 품고 있는 풍광은 그 자체로 감동이어서 미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공원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뉴욕의 심장부에 있는 센트럴 파크는 많은 나무와 호수, 그리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30여 점에 가까운 조각품이 공원의 격을 한층 높여 준다. 19세기 뉴욕의 지식인들이 머리를 맞대고 과감히 제안해 미국 최초로 조성된 공립공원인 센트럴 파크는 도시의 한복판에서 자리 잡은 거대한 숲이다. 덕분에 뉴욕은 산소통의 역할뿐만 아니라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을 품어주는 따뜻한 어머니의 품 같은 훌륭한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도시 환경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진 상황에서 얼마나 축복받은 일인가. 결국은 뉴욕시민들의 현명한 선택이 가져온 결과일 것이다.

전주에도 이런 훌륭한 도시 공원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가 전주종합경기장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지친 현대인들을 위로해주고 시민들의 문화향유 기회를 높여주는 문화의 숲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우리에게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의 관점에서도 전주의 중심에 있는 종합경기장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가는 매우 중요한 과제다. 공간의 큰 프레임을 보존하면서 일부분의 공간을 미술관과 박물관, 문화복합시설이 포함된 생태 숲과 함께 세계적인 규모의 국제조각공원을 만드는 일은 어떨까. 전주역 마중길에서 시작되는 전주의 첫인상과 전북대학교, 덕진공원과 전주동물원 그리고 종합경기장 터를 활용한 문화예술공원으로 이어지는 도시의 풍광을 생각해본다.

1963년 전주 종합경기장이 완공되고 세워진 비문에는 이러한 구절이 적혀있다.

“우리의 마음과 마음을 모으고 힘과 정성을 기울여 이 종합경기장을 마련함이니 이 땅의 아들과 딸들이여 우리의 뜻을 영원히 저버리지 말라 그리고 세월과 역사는 이것을 지켜 비와 바람으로 하여 이지러지지 말게 해 다오.”

지금은 대부분 작고했을 전주시민들이 후대를 위해 건립한 이 뜻을 온전히 새겨 다시 우리 후대에게 전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공간은 그 틀을 유지하면서 잘 다듬어 가장 가치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시민에게 돌려주는 것이 백번 맞다.

더구나 문화특별시를 지향하고 있는 전주는 무엇보다도 역사와 문화, 예술이 살아 숨 쉬는 특별한 공간들을 잘 보존하고 제대로 살려야 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저급한 개발도시와는 다른 선택이 필요한 이유다.

계획의 첫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면 다시 풀어 처음부터 차근차근 다시 꿰어야 한다. 일의 속도를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올바른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한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큰 화를 불러온다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의 역사에서 충분히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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