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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을 선택한 이유는 딱히 없습니다만

소해진 사회복지사
소해진 사회복지사

내 나이 30대 중반, 주변에서 하는 소리들이 있다. ‘자기는 언제 결혼해?’ ‘부모님한테 효도해야지. 나중에 가면 생각이 바뀌어’ ‘결혼 안한 여자들은 이기적이야.’ 저는 비혼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원색적이거나 애정으로 포장한 비난은 끝이 없다. 직접 대항해 몇 번 얘기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혼을 디폴트(기본값)으로 놓고, 모든 사람의 삶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공적인 자리나 직책이 있는 사람한테는 차별적 발언이라고 알려주지만, 보통은 상대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한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2000년대 초반 비혼이라는 말이 태어나기 전에 쓰였던 대표적인 명사는 ‘미혼’이다. 결혼해야 하는데, 아직 못했다는 뜻이다. 사실 결혼 이외에도 내가 아직 못한 것은 수두룩하다. 세계 일주, 영어 마스터, 세기의 사랑, 비혼 여성 노인 공동체 만들기 등. 왜 유독 생애 주기 과업으로 ‘결혼’만이 부각되는 걸까? 2000년대부터 저출산 문제가 심각해졌는데, 비혼이 자주 뭇매를 맞고 있다. 자녀를 원하는 이들의 한결같은 이야기는 아이를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독박 육아, 유치원 대란, 아동 성폭력, 결혼 밖 출산에 대한 낙인, 안전하지 않은 사회. 그 모든 사회적 비용을 비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안일하고 치졸한 방법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은 늦은 새벽, 누군가 현관문 번호 키를 미친 듯이 눌러댔는데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행여 내가 ‘여자’인 게 들통나면 더욱 위험해질까 봐, 술 취한 아저씨가 어서 사라지기를 소망했을 뿐이다. 내 주변 지인들에게 털어놓았을 때, 바로 경비실에 연락하라며 대처 방법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나를 통째로 압도했던 공포감이었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왜 저항하지 못했냐고 묻는 것은 그 공포감을 1도 몰라서 하는 얘기다. 그러니까, 결혼해야지! 혼자 살면 무섭잖아.라고 채근할 것 같은 당신. 이진송 작가의 말처럼 ‘우리 사회 안전 비용을 남편에게 아웃소싱’하는 게 가능한 걸까? 그것은 불가능할뿐더러(성폭력 범죄자의 80%가 아는 사람) 바람직하지도 않다. 혼자 살든, 둘이 살든, 그것과 상관없이 안전은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다.

비혼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딱히 없다. 누군가와 결합보다 ‘나를 돌보고, 키우는 것’에 더 관심이 많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결혼한 여성들의 삶이 행복해 보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엄마, 아내,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포기하는 일이 다반사다. 한마디로 결혼은 손해 보는 장사! ‘엄마처럼 살지 않겠어!’라고 다짐한 딸의 세대인 나는 불행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겠으나 굳이 그런 결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냥 나답게 살고 싶을 뿐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가구는 2016년 기준 539만 8000가구다. 1인 가구 비중이 30%에 육박했다. 인구 고령화와 더불어 N포 세대의 좌절로써 결혼을 포기하는 세태도 반영됐지만, 우리와 비슷한 일본을 보더라도 4인 가구 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옵션이 되는 사회, 누구와 함께 사느냐는 자격의 문제보다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로서 타인과의 친밀성, 책임감, 돌봄 같은 덕목이 중요해지는 사회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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