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보좌관-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 인기다. 국회의원 뒤에서 수없이 많은 타협과 번민을 반복하며 치열한 생존기를 써 내려가는 이정재(장태준 보좌관 역)의 이야기다. 유리천장에 도전하는 여성정치인 신민아(강선영 의원 역)를 보는 재미도 있다. 채널을 돌려 뉴스를 보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84일 만에 국회가 정상화되었지만, 추가경정예산 심의, 개혁법안·민생법안, 일본 수출규제 등 풀어야 할 난제가 산적해 있다.
필자가 공직에 몸담은 지 어언 30년이 되었다. 겪어보니 중앙부처의 모든 일은 두 가지로 귀결되었다. 법과 예산이 그것이다. 국회의원과 그 보좌진은 수많은 법안과 예산안을 검토하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러나 국민들의 지탄은 여전하다. 6·10 항쟁을 계기로 민주주의 제도는 정착되었지만,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갈증은 여전히 깊은 것 같다. 국민들의 시각에는 중앙정부는 아직 집권적이고 관료적이며, 정치권은 여전히 다툼과 대립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어디에서부터 꼬인 실타래를 풀어갈 수 있을까.
필자는 그 실마리를 지방분권에서 찾고 싶다. 지역경제, 일자리, 특성화 식품 등 미시정치 영역의 문제들은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방자치단체가 해결의 적임자다. 청년실업이 심각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인구소멸을 걱정하는 지역이 있다. 현장의 감응성을 지닌 지역에서 직접 해법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분권을 통한 다원주의의 확장은 혁신을 가져오기도 한다. 인류 역사에서 많은 경우 혁신은 변방에서 시작되었다. 지방 곳곳에서 창의성과 역동성이 발휘될 수 있을 때 로컬푸드, 사회적 경제, 생활임금, 대안학교 등 혁신적인 사례가 나온다.
지방은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자, 새로운 리더의 등용문이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41), 오스트리아 쿠르츠 전 총리(32) 등 젊은 지도자가 탄생한 것은 어린 시절부터 정치를 배우고 훈련받을 수 있었던 시스템 덕분이다.
정부는 지난 3월, 지방자치단체의 조직·인사 등 자치권을 확대하는 내용의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을 30년 만에 국회에 제출하였다.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주권을 보장하기 위한 재정분권 추진방안도 확정하였다.
주민참여와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주민투표·주민소환·주민발안을 활성화하는 내용의 ‘주민참여 3법’을 발의하였다. 지방의회가 단체장의 감시자(watchdog)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보완책도 마련하였다.
하지만 제도보다 중요한 것이 행위자다. 주권자인 국민들의 손에 지방분권의 성패가 달려 있다는 말이다. 갈수록 경제가 팍팍해져 먹고 사는 문제 외에는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지역 곳곳의 문제를 주민들 스스로 화합하여 해결해 나간다면 그만한 정치가 어디 있을까?
전북도민부터 지역사회에 대한 참여를 일상화하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때에는 후보자의 정책과 비전을 세밀하게 살펴봤으면 한다. 순자(荀子)의 말처럼,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고 혹은 뒤집기도 한다(水則載舟 水則覆舟).” 국민은 물(水)이다. 우리는 2017년 촛불혁명으로 이를 몸소 체험한 바 있다. 국민들 모두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 이인재 행정안전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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