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칼럼에 미·중 무역전쟁 관련 글을 올린 뒤 소식이 뜸했던 고향 친구들이 반가운 안부 전화와 함께 ‘두 나라가 싸우는 진짜 이유가 뭐냐?’라는 질문을 많이 해왔다.
중국이 객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 결사항전으로 임하는 이유는 179년 전 청나라와 영국간 벌어진 아편전쟁의 아픔과 분노가 있기 때문이다.
아편전쟁(1840-42)은 영국이 청나라와의 무역적자를 아편 밀수출로 만회하려다 무력 싸움으로 번진 사건이었다. 당시 청나라는 전 세계 GDP 35% 를 차지하는 동아시아 대국으로 중화사상에 안주해 있다가 현대화된 소규모 영국군에 패하면 서 ‘홍콩 영구할양, 광저우 포함 5개 항구 개항, 막대한 전쟁비용 배상’ 등의 굴욕적인 난징(南京)조약을 체결하였다.
이를 계기로 청나라는 세계 열강들의 이권 쟁탈 장으로 변하고 성난 종교단체 및 농민들의 반란이 8년간 100여 차례 일어나는 대혼란을 거치며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 이후 중국 지도자들은 국가발전 목표를 설정할 때마다 아편전쟁이란 치욕의 깊은 상흔을 되새기며 절치부심 부국강병을 위해 분투해 왔다.
따라서 지금의 미·중 무역협상 결과가 중국인들에게 민족 자존심을 손상하는 굴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질 경우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한 시진핑 주석에게는 곧 권력 기반을 상실하는 결정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은 오는 10월 건국 70주년, 내년 아편전쟁 180주년, 내후년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 그 다음해 공산당 전국 대회 등 굵직한 정치 일정들을 앞두고 있어 시 주석 운신의 폭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중국을 강하게 몰아 부치는 것일까?
현재 미국 내에는 그 동안 중국이 경제는 물론 군사·안보 분야에 까지 맹추격해 오는 것을 보면서 ‘중국 위협론’ 및 ‘그간의 대중국 정책 실패’에 대한 공감대와 함께, ‘중국 발전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견해가 형성되어 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지난 6월3일 중국 천안문사태 30주년 관련 중국정부를 비난한 뒤 “그 후로 수십 년간 미국은 중국이 국제시스템으로 편입하면서 보다 개방적이고 관대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희망했지만, 이러한 희망은 내동댕이쳐졌다”고 했다.
펜스부통령도 작년 10월 한 연설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운 중국’이 필연적이라는 낙관적 기대 아래 미국 경제에 자유롭게 접근하게 하고 세계무역기구 가입도 도왔으나 기대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지금의 미·중 무역전쟁은 그 출발점이 과거 청·영 아편전쟁처럼 대중국 무역불균형 문제를 강압을 통해 해소하고자 한 것에서 같다. 그러나 아편전쟁은 상승세였던 영국이 패권국 청나라에 도전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이며, 미·중 무역전쟁은 패권국 미국이 상승세의 중국을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따라서 미·중 무역전쟁은 협상과 대결의 긴장 국면이 장기간 지속될 것이며, 그로 인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존 국제질서를 흔드는 대혼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에 민감한 일본은 군사대국화로의 재빠른 변신을 꾀하면서 한국에 대한 공격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
그런데 우리 내부는 눈앞의 이익에만 매달려 조선시대 당파 싸움처럼 서로 나뉘어, 증오하며, 싸우고 있다. 그렇게 해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치욕의 날이 불과 109년 전 인데...
/송승엽 한반도 미래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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