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계국 피고 지고 능소화 피고 지고, 삼복에 배롱나무꽃이 뜨겁습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 무색하게 석 달 열흘 붉다는 저 배롱나무꽃, 언제까지 꽃일까요? 열아홉 시절처럼 막 꽃망울 터졌을 때 꽃일까요? 빛깔과 향내를 머금어야만 꽃일까요? 더는 벌 나비 찾아들지 않아도 이미 꽃인 걸까요? 저 환한 배롱나무꽃, 어디까지가 꽃일까요? 그래요, 꽃잎 한 장 한 장 다 꽃이겠지요. 예닐곱 장 붉은 꽃잎 꽃송이, 햇살과 바람과 어둠과 별빛과 새벽이슬과 알짱거린 박새까지 죄 어우러져 꽃이겠지요. 어쩔 수 없는 세월에 흩날린 저 돌확의 꽃잎도, 다시금 꽃이겠지요.
간지럼을 태우면 가지 끝이 키득거린다는 배롱나무. 저렇게 웃음보가 터진 걸 보면 누군가 살살 겨드랑이를 간질인 게 분명합니다. 세 번을 피고 져야 흰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할머니 말씀에 이 고운 꽃이 어서 지기를 고대한 적 있습니다. 아직 쌀밥 먹을 때가 아니라는 듯, 떨어진 꽃잎이 돌확에 한 번 더 피었습니다. 꽃그늘이 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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