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될수록 좋은 것들이 있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개인적으로는 술, 친구, 장맛을 꼽는다. 내 기억 속 장맛은 어머니가 장독에서 퍼오신 고추장과 갓 짠 참기름을 버물려 먹던 비빔밥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장맛은 발효의 미학이다. 인간이 먹는 음식의 3분의 1은 발효된 음식이다. 놀라운 건 발효와 부패가 한 끗 차이라는 점이다. 미생물의 효소가 유기물을 분해해서 유용한 물질을 만들면 발효, 유해한 물질이 되면 부패이다. 일의 과정에서 드러난 아주 작은 차이가 종종 다른 결과를 불러오는 우리의 인생사를 닮았다.
우리 한식의 든든한 버팀목인 장류 삼형제는 된장, 간장, 고추장이다. 된장, 간장은 차이는 있지만 한·중·일 모두에 있다. 고추장은 오직 우리나라에만 있는 조미료다. 간장이나 된장이 우리조상의 식탁에 오른 것은 1,200년 전인 통일신라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고추장의 원료인 고추가 일본에서 전래했다는 기록이 광해군 4년(1614년)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나타난다. 고추장 제조법은 영조 42년(1766년)에 유중림(柳重臨)이 간행한 『증보산림경제』에 처음 등장한다. 이 시기에 우리 선조들이 고추장을 애용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추장은 재료와 만드는 법에 따라 다양하다. 예로부터 보리고추장·약고추장·팥고추장 등이 있었고, 최근에는 매실, 마늘, 딸기고추장으로 변신 중이다. 지역은 해남·순창·진주의 고추장이 명성을 얻었다. 이 중 순창 고추장은 임금님 진상품으로 유명하다. 식욕이 떨어진 영조의 입맛을 사로잡은 순창 조씨의 고추장 일화는 그 유명세를 짐작케 한다.
순창 고추장 맛의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발효이다. 순창은 겨울철 기온이 따듯해 고추장의 품질을 좌우하는 효모균의 번식에 최적지라 할 수 있다. 섬진강 상류의 지하 암반수, 햇볕에 잘 말린 태양초는 풍미를 더한다. 여기에 순창 고추장의 명맥을 이으려는 순창 사람들의 피땀 어린 노력이 있다.
순창군은 고추장의 주원료인 콩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농가와 계약재배를 하고 있고, 정부와 협업하여 논에 콩 등 타작물재배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부와 순창군은 논콩재배 농가에 1ha당 총 380만원을 지급한다. 지난해 참여농가는 1,926곳, 장류업체 구입액도 31억5천만원에 달한다. 이는 쌀 수급과 가격 안정은 물론, 벼농사 보다 소득을 1.8배 올리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뒀다.
더 나아가, 장류 1번지라는 순창의 브랜드에 체험프로그램, 지역의 관광명소, 숙박시설을 연계한 체류형 농촌관광을 활성화하고 있다. 정부가 농가소득 제고, 일자리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 중인 농업 6차산업이 정책배경이다. 1차 농산물을 가공하는 2차, 여기에 체험, 숙박 등 3차 산업인 서비스를 더해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지난해에 60만명이 넘는 사람이 이곳을 찾았다. 순창은 핫(hot)한 고추장만큼이나 핫플레이스(hot place)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 모든 것들을 보고 체험할 기회가 있다. 오는 10월 18일부터 3일간 순창장류 축제가 열린다. 가족들, 친구들과 순창에서 세상에 하나 뿐인 고추장 레시피를 만들어 보자. 더블핫(hot hot)한 추억은 덤일 것이다. 비록 놀부는 화초장 이름은 잊었지만, 여러분은 순창 고추장 맛은 잊지 못하리라.
/김종훈 농림축산식품부 기획조정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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