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주민 10여 차례 민원 제기에도
자치단체 한 차례도 행정처분 없어
피해배상 치유책 등 후속조치 시급
지난 1984년 12월 3일 인도 중부의 보팔시에서 발생한 화학가스 폭발사고(Bophal disaster)는 세계 최대의 환경 대참사로 기록됐다. 주민들이 잠든 새벽에 다국적 화학기업인 유니언카바이드의 살충제 공장에서 새어나온 아이소사이안화메틸(MIC) 가스가 빈민가 주택 밀집지역을 덮쳤다. 가스 냄새 때문에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하나둘씩 쓰러지기 시작했고 길거리는 죽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날 2800여 명이 사망했고 1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명이나 중추신경계와 면역체계 이상 등 중증 장애를 가졌다. 이후 사고 후유증으로 2만여 명이 사망했고 피해자는 58만여 명으로 늘었지만 35년이 지난 지금까지 보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살충제 원료로 폭발 위험이 높은 아이소사이안화메틸의 저장탱크가 부실한 데다 안전관리마저 제대로 안된 전형적인 인재(人災)였다. 3년 전에도 공장에서 가스 누출사고가 있었지만 제대로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은 탓에 엄청난 재앙을 초래했다.
평화롭던 익산 함라면 장점마을도 지난 2001년 비료공장이 들어선 이후 죽음의 공포가 드리워졌다. 공장에서 나오는 역한 냄새 때문에 주민들은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고 공장 폐수가 흘러들어간 저수지에선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주민들은 행정기관에 수없이 민원과 진정을 넣었지만 공장은 아무 탈 없이 돌아갔다. 급기야 2006년 첫 암환자가 발병한 이후 지금까지 마을 주민 99명 가운데 33명이 암 판정을 받았다. 이들 가운데 17명은 사망했고 16명은 고통 속에 투병중이다. 암은 노인과 젊은이를 가리지 않고 발병했고 심지어 부모와 아들 등 일가족 3명이 암에 걸려 모두 사망하기도 했다.
마을 주민들은 생존 차원에서 10여 차례 민원을 내기도 하고 시위도 벌였지만 누구 하나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관리감독기관인 전북도나 익산시, 그리고 비료공장은 주민들의 애끓는 호소를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되레 비료공장 측은 주민들을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9월 주민들이 직접 비료공장 안을 샅샅이 찾아 본 결과, 담뱃잎 찌꺼기인 연초박 폐기물을 발견했다. 비료공장에선 이미 2006년 12월 전라북도에 연초박 사용신고를 했고 연간 1천여t씩 연초박을 가공해서 퇴비를 생산해왔지만 익산시는 연초박 사용사실을 몰랐다며 발뺌했다. 2017년 비료공장이 문을 닫고 난 뒤에야 환경부에서 역학조사에 나섰고 2년만인 지난달 연초박에서 발생한 1군 발암물질인 담배특이니트로사민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류 등이 집단 암 발병과 인과관계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너무 뒤늦은 정부의 대처와 발표에 주민들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해 온 민원에 전북도와 익산시가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실태조사를 했다면 장점마을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뒤늦게 국무총리와 전북도지사, 익산시장이 나서 주민들에게 사과했지만 사과문만 낭독하고 말아 진정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장점마을의 집단 암 발병사태는 공직사회의 무책임과 무사안일이 부른 환경 참사다. 또한 우리 사회의 환경안전에 대한 총체적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책임 규명을 위한 감사원 감사가 6일까지 익산시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철저한 감사를 통해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밝혀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와 자치단체는 억울한 죽음과 피해를 당한 주민들의 피해 배상 및 구제 조치와 치유 회복에 적극 나서야 한다. 암 발병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왈인·장고재 마을 등 주변지역에 대한 추가 역학조사도 필요하고 이 같은 사태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후속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연초박 배출 사업장인 KT&G도 모르쇠로 일관하지 말고 주민들에게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 이번 환경 참사를 계기로 환경안전에 대한 경각심과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우리 모두의 가슴에 되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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