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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감 2020 시민기자가 뛴다] 서점의 이유, 지역의 이유2

코로나19 시대를 버틸 수 있는 힘
동네책방과 상생하는 도시의 실천들

전주시립도서관은 전주 책방 및 서점들과 꾸준한 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전주시립도서관은 전주 책방 및 서점들과 꾸준한 협업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책방에 혹시 확진자가 다녀가면, 책은 모조리 ‘소각장’이죠.”

코로나가 정점을 찍고 있을 때, 한 책방 대표가 말했다. 일순간 분위기는 갑분싸(갑자기 분위기 싸해짐)가 됐다. 나는 우리 책방에 있는 책이 모두 소각장으로 끌려가 불에 타오르는 장면을 떠올렸다. ‘말도 안 돼.’

그런 불안감을 안고 석 달을 보냈다. 기적적으로 코로나 불길이 잦아들었다. 모두가 애쓴 덕분이었다. 휴업하던 책방은 다시 문을 열고, 손님도 서서히 책방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휩쓸고 간 화마는 아직 검게 남았다. 아니 다시 시작될지도 모르겠다.

과거 셀 수 없이 많던 동네 책방이 마치 전염병에 걸린 듯 한꺼번에 사라지고 만 것처럼, 버티고 버티던 책방들도 하나 둘 우리 눈앞에서 떠나버린 것처럼. 서점이 사라지자 독자도 사라지고, 독자가 사라지자 출판사가 사라진 것처럼. 책으로 풍성했던 생태계를 잃자 독서인구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작가들이 가난해진 것처럼.

책방과 상생하는 도시의 노력은 이제 더는 ‘왜?’라는 질문 앞에 제자리걸음을 해선 안 된다. 책방을 위한 도시의 노력은 책방을 위한 것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라져가는 문화를 지켜내기 위해서, 돈으로 살 수 없는 지적자본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서, 동네와 골목에 사람이 넘쳐날 수 있는 이유를 복원하기 위해서, 자라나는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건강을 잃지 않기 위해서. 지켜나가야 할 최소한의 잠금장치이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지역 서점을 응원하는 방법

코로나19로 어려워진 문화거점 책방들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각 지자체들이 힘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책방이 가장 많은 서울시는 어떤 방책을 내놨을까. 시는 소규모 동네책방 120개소에 긴급 운영비를 간접 지원하는 방식으로 예산을 먼저 풀었다. 온라인 프로그램 기획·운영비, 장소사용료 등을 총 100만원 내외로 지원하고, 자체적으로 온라인 프로그램 기획·운영이 어려운 동네서점에는 영상 촬영과 서울도서관 유튜브·SNS 채널을 통한 온라인 업로드를 돕기로 했다.

이어 헌책방 12개소에는 올해 개최 예정인 책 시장과 연계해 시가 헌책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5월 중으로 16개 헌책방에서 각 100만 원 내외의 헌책(총 2000~3000여 권)을 우선 구매하고, 헌책을 활용해 큐레이션 전시, 헌책 블라인드 북숍 등을 진행한다. 북큐레이션이란 특정 주제에 맞게 책을 선별해 보여주는 방법을 말한다.

이렇듯 같은 100만원이지만 기획 역량이 있는 동네책방에는 온라인 프로그램 운영비를 지원하고, 헌책이 쌓여 소비가 시급한 헌책방엔 직접구매로 숨통을 열어주는 것이 이번 서울시 지역 서점 지원의 특징이다. 여기에 카카오와 ‘랜선 북클럽 운영’을 제시한 점도 퍽 흥미롭다. 책방지기가 북클럽장이 되어 지금 함께 읽으면 좋을 책 1권을 선정하고 프로젝트를 개설하는 형식인데 멤버들은 매일 약속된 페이지만큼 읽고 인증하면 된다. 이를 운영하는 책방에게는 50만원을 지원한다.

주로 책방에서만 손님을 만나던 동네책방 주인들은 온라인 프로그램 기획이라는 새 길을 통해 만나지 않고도 만나는 방식을 모색하며 책방 홍보의 새 장을 열고, 헌책방 주인들은 ‘책 시장’이라는 오프라인 무대에 나가 큐레이션 전시 등 새 영역에 다가서며 오래된 책의 가치를 알릴 수 있어 새삼 의미 있다.

100만원 지원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서울시 도서관의 계획은 동네서점과 헌책방의 문화거점으로서 역할을 인정하며, 어려운 시기일수록 새 실험과 방식으로 함께 돌파해보자는 잔잔한 응원이 깔려 있는 듯하다.

 

택배비 책정한 경기도, 문화비 늘린 김해시

도내 300개 인증 지역서점을 대상으로 1곳당 최대 36만원의 도서 택배비를 지원하는 경기도의 깜짝 기획도 반갑다. 택배비 지원은 경기도의 착한소비 운동에서 나온 목록 중 하나로, 사회적 거리두기로 책방에 방문하기 힘든 시기인만큼 손님들이 책을 주문하면 택배로 보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었다. 지역서점의 생태계를 꿰뚫어보고 함께 고민하는 경기도의 아이디어가 핀셋처럼 뾰족하다.

코로나19 지역 서점 지원 정책에 관계없이 꾸준히 분발하고 있는 경남 김해시의 오름세도 눈여겨볼 만하다. 김해시는 동네책방 활성화를 위해 올해 6억600만원을 투입해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김해시의 동네책방 도서 구입비 예산은 6억 원으로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나 문화 프로그램 지원 예산은 예년 평균 3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2배 늘었다. 서점과 동아리를 이어주는 독서동아리 공간나눔 사업, 서점에서 작가와 시민들이 만나는 ‘작가와 서점 나들이’ 프로그램, 지역서점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2020년 동네책방 지도’도 눈에 띈다.

‘작가와 서점 나들이’ 프로그램의 경우,?초기엔 작가 섭외부터 참가자 모집까지 시에서 일괄 추진하고 서점에서는 장소만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행사 역량이 있는 ‘복합문화형 서점’이 점점 늘어나 작년부터는 시에서 강사료 지급과 포스터 제작 등 행정적인 지원만 하고 작가 섭외, 참가자 모집 등 행사 전반은 서점에서 전담해 진행한다. 민과 관의 역할 분담을 통해 민간의 역량을 강화하는 이상적인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전주 책방은 협업과 교류로 상생 가능성 만든다

전주책방네트워크가 최근 전주시청광장에서 발대식을 갖고 활동에 나섰다.
전주책방네트워크가 최근 전주시청광장에서 발대식을 갖고 활동에 나섰다.

전주시 도서관도 전주 책방과 서점의 생존을 돕기 위해 노력 중이다. 전주시 인증 지역서점을 대상으로 올 한해 10% 할인가가 아닌 100% 정가로 도서를 납품 받고 있다. 이어 ‘동네책방에서 산다, 동네책방이 산다’를 주제로 전주 책방과 협업해 특색있는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며 곧 있을 도서관 개관에 맞춘 행사도 함께 준비 중이다.

전주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선 전주 책방과 함께하는 코로나 극복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주 책방 10곳에서 2만원 이상 선결제(책 구입)하고 SNS에 인증샷을 공유한 뒤 2명 이상을 지목하는 릴레이 캠페인으로,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책방에 응원을 실어주기 위해 전주지속협이 기획했다. 캠페인은 ‘몸은 멀리, 책은 가까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5월 31일까지 진행된다. 한 사람의 힘이 두 사람으로, 열 명으로, 백 명으로 이어지는 릴레이의 힘, 어려울 때일수록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최근 전주 책방 10곳이 뭉쳐 탄생한 ‘전주책방네트워크’는 5월 1일 발대식을 갖고 공식 활동에 나섰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다양한 책방‘의 존재감을 더해 전주를 모두가 부러워하는 책의 도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다각적인 교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전주책방네트워크 이지선 회장은 ”전주책방네트워크는 지역 사회를 바탕으로 책 문화를 만들어가는 책방들의 연합“이라며 ”각 책방만의 개성 있는 (북)큐레이션으로 시민들과 더 가까이 소통하며, 다양한 문화 활동과 독서 운동에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코로나 시대, 생존하는 책방과 실천하는 도시의 협업이 어느 때보다 고맙고 의미 있는 지금, 환기만큼 온기가 필요할 때다.

 

/임주아 시인·물결서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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