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6년 6개월 동안 행정공무원으로서 공직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전북혁신도시에서 아내의 공인중개사 일을 보조하면서 ’고재현행정사 사무소‘ 간판을 걸고 매일 정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 대부분을 공직에 몸담아왔기에 누구보다 후배 공직자들을 아끼는 마음이 강하지만 행정사의 눈으로 본 쓴소리를 후배들에게 하려고 한다.
행정사의 첫째 역할은 ‘행정구제’이다. 즉 도민생활과 관련해서 일선 시·군 등 행정청의 행정행위가 위법·부당할 경우에 공직에서 오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행정심판 청구 등의 조력을 통해 권익을 찾아주는 것이다. 둘째는 행정청이 당사자에게 의무를 부과하거나 권익을 제한하는 침익적 행정처분이 있을 경우 불만을 토로하기 마련인데, 이는 당사자가 관계법령을 잘 모르거나 행정을 잘 이해하지 못해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는 행정사가 전문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자세한 설명을 통해 설득함으로써 무작정 소송으로 인해 소요되는 많은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게 하고, 공무원과 처분 행정청을 이해시키는 중간자 역할도 한다.
물론 여기에서는 시시콜콜 처분청의 처분사유나 재결청의 기각사유를 거론하지 않겠지만 여러가지 사건을 맡은 행정사로서 답답할 때가 왕왕있다.
우선 “처분청은 과연 사건의 쟁점에 대해 면밀히 검토했는가”라는 의문이 들때가 많다. 비슷한 사건에 대한 대법원판례 검색까지는 기대하지 않지만 담당자들이 법규적용이나 제대로 검토하고 있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은게 사실이다. 주변 행정사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공직사회가 아직도 청구인인 주민의 억울함에 귀기울이기 보다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는 거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일반 주민들은 “행정심판을 해봐야 결국 행정기관의 편을 들 뿐”이라는 인식이 의외로 강하다는데 필자는 놀라곤 한다.
전문지식이 없는 청구인이 겪는 시간적, 경제적 에너지 소비는 그만두고라도 소송 과정에서 겪어야 할 고통과 힘겨운 행정청과의 다툼, 손해를 생각하면 공직유감(公職遺憾)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 온 필자조차 이해되지 않는 행정처분이 의외로 많다는 점에서 “일반인들이 공직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송하진 도지사는 평소 사심보다는 공심을 피력하고 균형감각, 조감 및 공감능력, 역지사지를 강조하고 있다. 단체장의 이같은 철학이 중간 또는 말단 행정에까지 제대로 투영되지 않는다는 느낌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이 아닌듯 하다. 지역사회에서 많은 이들이 공무원 또는 공직사회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과 불만을 잘 알기에 후배공무원들이 좀 더 고민하고 반성하는 자세로 행정에 임해줬으면 하는 쓴소리를 하고싶다. 박노혜 시인의 ‘한계선’이라는 시의 한 대목을 보자.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그만 금을 긋고 돌아서고 싶을 때 묵묵히 황무지를 갈아가는 일소처럼 꾸역꾸역 너의 지경(地境)을 넓혀 가라” 이게 공직자의 바른 자세가 아닐까.
/고재현 행정사·전 도청 전국체전준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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