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음이 무성한 여름이면 걷고 싶은 길이 있다. 더구나 올해처럼 힘들고 답답한 시절엔 자녀와 함께 호젓한 이 길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바로 완주 소양면 신촌리에서 진안 부귀면 세동리로 넘어가는 곰티재 옛길과 내장사 금선계곡 용굴로 가는 조선왕조 실록길이다. 두 길은 1592년, 그해 여름에 있었던 전라도민의 이야기가 살아 있는 길이다.
곰티재 옛길은 일제 강점기인 1910년대 건설된 신작로로 1970년대 모래재 구간이 건설되기 전까지 전주에서 진안으로 넘어가던 주요 교통로였다. 427m인 곰티재를 오르는 옛길은 고개를 굽이굽이 돌아서 걷는 거리가 5.2Km가 되니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7월의 곰티재 옛길을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노라면 길가에 핀 하늘나리, 산딸기, 쐐기풀이 미소 짓고 만덕산 울창한 숲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그러나 고갯길 중간까지 높이 100m가 넘는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가 지나며 시야를 막는 것은 옥에 티다. 고개 마루에 도착하면 진안 부귀면의 경계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면 웅치전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에 버금가는 웅치전투는 1592년 음력 7월 8일에 곰티재 일대에서 벌어졌던 전투이다. 우리 관군과 의병은 웅치전투에서 수천 명이 전사하며 패했으나, 이튿날 다시 지금의 소양과 금상동, 신정동 일대에서 벌어진 안덕원 전투에서 승리해 곡창지대이자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성을 지켜냈다. 당시 왜군은 조선군의 용맹함에 감탄해 조선군의 시체를 묻고 조선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행위에 조의를 표한다는 뜻의 ‘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는 푯말을 세웠다고 한다. 늦었지만 최근 당시 조선군 무덤 터 등 웅치전적지를 발굴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또 하나의 길은 여름철 짙푸른 내장산 숲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조선왕조 실록길이다. 실록길은 내장사에서 금선계곡을 따라 약 1.5Km 정도 완만한 길을 걷다가 마지막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깍아지른 절벽에 있는 목적지인 용굴이 나온다. 용굴은 길이 8m, 높이는 2~2.5m로 제법 크다. 실록길은 조금만 걸어도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많다는 내장산 이름처럼 숲 속으로 깊숙이 들어간 느낌이 든다.
1592년 음력 6월, 왜군이 전주로 침략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기전 참봉 오희길은 태인의 선비 손홍록을 찾아가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경기전에 있는 태조어진을 옮기는데 도와줄 것을 간청했다고 한다. 유생 손홍록은 학문을 같이 했던 안의와 함께 수십 명의 사람과 말을 끌고 전주로 달려가 실록과 어진을 싣고 일주일 넘게 걸려 내장산 깊숙한 곳 용굴암까지 옮긴다. 이후 실록을 조정에 인계할 때까지 13개월여에 걸쳐 실록을 지킨 이는 안의, 손홍록과 더불어 자발적으로 나선 이름 없는 민초들이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으로 춘추관, 성주, 충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실록은 불타버렸지만 전라도 선비와 민중이 지켜낸 전주사고의 조선왕조실록만 유일하게 남아서 역사를 전하고 국보와 세계기록문화유산이 되었으니 전북도민으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곰티재 옛길과 조선왕조 실록길!
그해 여름, 왜군들의 침략에 맞서서 치열하게 싸웠던 전라도민의 피땀 어린 길이다. 2020년 여름, 전라도 정신이 오롯이 녹아있는 두 길을 걷다보면 힘과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미영 대표는 (사)전북청소년교육문화원 이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전북농촌지역교육네트워크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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