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폭력적, 선정적 장면을 그대로 무대에서 재현한 것으로 논란이 되었던 서울연극제 출품작의 연출과 n번방 사건과 유사한 소재를 담아내면서도 주인공 남성을 미화해 문제가 된 넷플릭스 작품 감독은 모두 표현의 자유를 근거로 “예술을 그저 예술로 봐달라며” 표현의 자유를 항변했다. 또한 최근 자신의 작품 ‘복학왕’ 304화에 인턴이었던 여성이 성상납 이 후 정직원이 됐다는 장면을 그려 넣어 논란이 된 기안84가 지난 주 프로그램과 방송국 측의 공식 사과나 별다른 조치 없이 슬그머니 방송에 복귀했고 이를 옹호하는 유명 동료 웹툰작가는 “만화를 만화로 보라”며 ‘시민독재’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예술가 혹은 창작자로서 가져야 할 직업윤리는 망각한 채 너무도 당당하게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만을 주장하는 그들의 태도를 동료예술인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여성예술인으로서 묻고 싶다. 여성의 삶을 희화화하고 축소하며, 대상화하고 폄훼, 혐오하는 방식의 창작물에게 표현의 자유라는 권리를 왜 존중해야 하는가? 도대체 예술의 가치는 얼마나 숭고한 것이기에 타인의 인권을 빼앗고 짓누르는 것조차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용해야 하는가?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즉흥극과 페이크다큐, 비평극과 다원예술 그 중간 어디쯤에서 작품의 형태를 정의 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메시지는 명확하다. 고전이라는 미명하에 존엄성과 주체성을 빼앗긴 수많은 여성캐릭터의 이름을 다시 호명하고 동시대적 관점으로 그들의 삶을 재해석하고자 한다는 것. 시놉시스를 작성하고 지원 서류를 꾸린 뒤 연극, 성악, 전통, 무용, 문학 총 다섯 개 예술장르에서 활동하는 여성예술가를 섭외하기 시작했다. 활동장르와 범위가 넓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섭외는 첫 시도부터 난항을 겪었다. “작품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자신이 배우고 익힌 고전을 비평할 자격이 없다.”는 말로 거절을 당한 것이다. 나의 설명이 부족한 것일까, 작품이 매력적이지 않아서 일까 고민에 빠져 있던 나에게 두 번째 거절의사를 밝힌 예술인의 대답은 고민에 확실한 해답을 찾게 했다. “선생님들께서 해 오신 작업에 누가 될 것 같다.”는 것. 그 뒤로도 네 번의 시도를 해봤지만 같은 맥락의 이유로 번번이 거절당했다. 그녀들은 모두 작품의 메시지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고전을 신성시하도록 교육 받았던 예술교육의 폐해, 좁은 지역사회의 창작 활동영역, 단 한편의 작품을 출연하더라도 그 작품의 내용과 예술가의 신념을 동일하게 인식할 것을 우려하는 마음, 추후 논란이 될지도 모르는 작품에 자신에게도 꼬리표처럼 따라 붙을 페미니스트라는 평판, 이로 인해 다음 프로젝트를 이어줄 인맥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여하튼 다양한 이유들이 복잡하게 얽혀 출연을 주저하게 만든 것 이었다. 이것은 그저 수많은 작품 중 단 한편의 ‘연극’일 뿐인데도...
나는 이번 섭외과정에서 알게 된 여성 예술인들의 학습된 두려움을 보며 “예술을 예술로 봐달라”는 워딩이 가진 의미와 가치는 결코 모든 예술인의 표현의 자유를 담보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이미 주류가 되어버린, 그래서 대중을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경험과 평판이 충분히 축척된, 때문에 다양한 측면에서 고려하고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는 소위 가진 자의 편한 작업방식을 지키기 위한 문구였음을 분명하게 느낀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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