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변호사
작년 말 개봉한 켄로치 감독의 ‘미안해요, 리키(Sorry We Missed You)’는 한 택배노동자의 가족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1936년생의 이 노장 감독은 꾸준히 사회적 사실주의 영화를 제작해왔는데, 전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서 복지제도의 허점을 짚었다면, ‘미안해요, 리키’에서는 시대적 트렌드로 불리는 플랫폼 노동의 취약성을 파고 들었다.
2008년 금융위기 여파로 실업 후 일용직을 전전하던 리키는 새 삶에 대한 희망을 안고 개인사업자 신분을 갖는 택배기사 일자리를 구한다. 성실히 일하며 간병사로 돌봄노동을 하는 아내와, 말썽도 부리고 철 들기도 하는 사춘기 자녀 2명과의 단란한 가정을 지키려 애쓰지만, 장시간의 고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에 몸과 마음은 망가져가고, 자영업자라는 이유로 회사의 어떠한 보호도 없이 모든 불운과 책임을 개인적으로 떠맡으며 화목했던 가족 관계마저 무너져 내린다. 픽션인지 다큐멘터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적인 데다가, 배우들이 외국인이라는 점을 빼면 상황 자체는 영국인지 한국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도 씁쓸함을 더한다.
우리나라에서 올해 사망한 택배노동자의 수는 이미 10명을 훌쩍 넘겼고, 대부분 과로사로 추정된다. 실태조사 결과 집계된 택배노동자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70시간, 월간 평균 근무일수는 25일을 상회한다. 산업재해 사건에서 과로로 인한 업무상 재해가 가장 쉽게 인정되는 업무시간 기준이 주당 평균 64시간이니, 가히 ‘극한 직업’으로 부를 만하다.
하루에 여러 시간은 보수를 받지 못하는 소위 ‘까대기’(분류 작업)에 쓰고, 남은 시간에는 수백 건의 물량을 1분에 1개꼴로 배달하기 위해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초인종을 누르고 재빨리 돌아오는 사투를 벌인다. 짐을 든 채로 수만 보를 걷고 100층 가까운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과로가 되지 않는다면 도리어 이상하다.
다행히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구도가 점차 형성되고 있다. 택배노동자들이 입는 옷이나 받는 물건에도 새겨져 있고 작업지시에도 등장하지만, 대리점·영업소와의 하도급관계나 위탁구조를 이유로 노조의 교섭에 응하지 않았던 원청회사는 작년 말 교섭에 응하도록 판결을 받았다. 택배기사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판결들도 올해 속속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전자상거래의 성장세에 물동량이 꾸준히 증가해오던 택배회사들은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소비까지 급증하자 미증유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누리고 있다. 경영상의 어려움을 빌미로 무보수 분류노동을 택배기사에게 전가시키면서 비용은 부담하지 않으려 했던 사측 입장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공감받기 어려워진 것이다.
노동계 의견을 반영하여 택배기사에게 위탁계약갱신청구권을 6년간 보장하고, 운전종사자와 분류종사자를 구분하여 분류작업에 별도 비용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근거를 마련한 생활물류서비스발전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폐기되었지만, 현 21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되었고 여당 의석만으로도 단독 처리가 가능한 상황이다.
영화 원제인 ‘Sorry We Missed You’는 다의적 표현이다. 택배기사가 고객을 만나지 못한 채 물건만 두고 올 때 남기는 쪽지 문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정과 사회가 ‘(택배기사) 당신을 놓쳐서 미안하다’, ‘당신을 잃어서 미안하다’, ‘당신이 그리웠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 사회와 전국의 5만 택배노동자들이 서로에게 미안해하거나 서로를 그리워해야 하는 일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기 바란다. /박지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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