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경 전북문화재단 창작기획팀원
코로나로 인해 영화관을 마음 놓고 찾지 못했던 최근, 그만큼 영화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아서 보고 싶었던 영화를 미루고 미루다 보게 되었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2018)는 평범한 14살 소녀 은희(박지후扮)가 그 나이 즈음에 경험하게 될 풀리지 않는 주변 상황(가부장적인 가정, 남자친구와의 이별, 적당한 비행 같은) 속에서 아픔을 겪고 또 조금씩 성장해 가는 이야기였다. 모든 것이 혼란스럽기만 한 은희는 새로 온 한문 학원 선생님 영지(김새벽扮)에게 호기심을 느끼게 되었고 항상 자신을 다그치기만 하는 어른들과 달리 자신에게 훈계가 아닌 공감을 해주는 영지에게 의지하게 된다. 비록 안타깝게 그들의 관계는 끊어지게 되지만 영지가 은희에게 써준 마지막 편지는 오랫동안 내 마음 속에 남았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을까. 어느 날 알 것 같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이 함께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고 무언가를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그렇게 닮고 싶은 사람의 시선을 자기 안에 담으면서 은희는 성장하게 되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그것이 나에게는 예술작품을 감상하면서 개인의 내면에서 생겨나는 변화의 구조와도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우리는 예술작품을 접하면서 예술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간접 경험하게 된다. 아름답고 섬세하게 묘사된 풍경화의 한 장면을 보면서 예술가가 삶속에서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들을 느끼고 우리 개개인의 삶에서 잊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상기할 수도 있으며 쉽게 지나쳤던 일상을 포착한 작업을 감상하며 삶을 바라보는 좁은 시야를 자각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짧은 예시에 불과하지만 위와 같이 관람자의 마음속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성향의 작품이 있는 반면에 상대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작품도 존재한다. 사회화의 과정에서 밖으로 꺼내지 않음을 미덕으로 배웠던 터부시 되는 소재들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또한 동시대 예술의 매체적인 실험들은 우리가 집단 안에서 습득하여 고착화된 인식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기를 요구하기 때문에 그 과정 속에서 쉽게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심리적 방어체계를 내려놓고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을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힌트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단순히 심리적인 경계를 넘어 들어온다고 해서 회피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은 어떨까?
실제로 예술의 역할이 종교적, 정치적인 선전의 도구를 지나 개인적인 영역으로 전환되면서 많은 예술가들이 사회 안에서 개인의 소외 그리고 당연히 마주하게 되는 부조리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작품들 중에서 마음속에 미약하지만 계속 남아있는 작품 또한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약한 연결고리가 자신의 삶에 겹쳐졌을 때 선뜻 공감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예술가의 언어는 진실성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영화 속의 소녀가 자신이 동일시했던 대상의 생각을 쫒아 가며 성장 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예술가의 시선을 감상하면서 자신이 잊고 있었던 가치를 찾고 또한 멈추지 않고 다가오는 삶의 문제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마련했으면 한다. /이주경 전북문화재단 창작기획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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