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완 주 베트남 대사
오늘날 필봉 굿 또는 필봉농악으로 국내외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마을이 내 고향이다. 우리나라가 급속한 근대화를 거치면서 다양한 전통문화와 아름다운 풍속들이 자취를 감추었지만, 나의 고향마을은 300년 이상 전통농악을 잘 보존하여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마음이 뿌듯하다. 매번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마을 어귀의 필봉농악 전수관에서 흘러나오는 굿 소리를 들을 때면 어렸을 때 마을사람들과 함께 신나는 굿 소리에 흠뻑 젖어 덩실덩실 춤도 추면서 명절날을 즐겁게 보냈던 소중한 추억들이 되살아난다.
회고해 보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50가구의 고향 마을은 명절날에 동네어른들이 굿을 치면서 행운을 빌어주는 풍습이 있었다. 마을 굿은 대체로 음력 섣달 그믐날, 대보름날, 추석 전날에 어둠이 내릴 무렵에 시작하여 자정이 넘어 끝이 난다. 옷매무새도 특히 아름답다. 각자 꽃 갈모를 쓰고, 흰색 바탕 옷에 노랑, 파랑, 빨강색의 삼색 드림을 어깨에 두르고 꽹과리, 장구, 징, 북을 치는 악기 잽이 와 허두 잽이라는 잡색들로 구성된다. 처음엔 꽹과리가 흥을 돋우며 앞장서고 징과 장구가 뒤따르지만, 나중엔 어린동생, 친구, 누나, 형들이 등불이나 횃불을 들고 길 안내를 하면서 큰 무리를 형성한다.
마을 굿을 치는 순서도 정해져 있다. 먼저 길거리 굿을 시작으로 마을 당산과 우물 굿을 친 후에 집집마다 방문하여 행운을 비는 굿을 친다. 집안 굿은 문 굿, 마당, 부엌, 장독대, 우물을 돌아가며 신나는 굿으로 행운을 빈 다음에 마당에 이르면 미리 피어 놓은 모닥불 옆에 손수 장만한 명절 음식상이 준비되어 있다. 대부분 조금씩 맛을 보고 다른 집으로 이동하지만, 비교적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는 여유로운 집에서는 푸짐한 음식상을 준비하고 손수 빚은 전통주를 대접한다. 모닥불이 하늘높이 피워 오르면 마을 굿은 최고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함께 어우러져 얼-쑤를 외치고 굿 가락에 맞추어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하나의 마음으로 뭉쳐지는 시간이자 행복한 시간이다. 정말로 나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었지만, 이제는 굿을 치던 옛 어른들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다시 그처럼 신나는 모습을 뵐 수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고향의 명품인 필봉 농악은 1970년대 말 마을 굿이 원형 그대로 잘 보전되어 있다고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국가 무형 문화유산으로 공인받고 급기야는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아 필봉농악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필봉농악이 성장 발전하는 데에는 1990년대 중반 세상을 떠나신 나의 외사촌 형이자 상쇠 기능 보유자였던 고 양순용 선생님이 남기신 문화유산과 그의 큰 아들이자 인간문화재인 양진성 필봉농악 보존회장의 부단한 전승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소중한 전통문화자산이 앞으로도 더욱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필봉농악이 한국에서 뿐 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한류확산의 한 부분으로 핵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크게 기대해 본다. /박노완 주 베트남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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