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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멀어지면 (Out of sight)

이강만 한화에스테이트 대표

이강만 한화에스테이트 대표
이강만 한화에스테이트 대표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영어 속담이 있다. 영어를 배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읽힌 문장이 바로 이 “Out of sight, out of mind”다. 코로나로 인해 삶의 일부가 되어버린 사회적거리두기가 이제는 아주 가까웠던 사람들조차도 서로 소원하게 만들고 있다. 소설가 최인호 선생은 그의 에세이 ‘산중일기’에서 “눈에서 멀어진다고 해서 마음도 멀어지는 것은 참사랑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애절히 서로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위 영어 속담이 매우 설득력 있어 보인다.

뭐라 해도 깨복쟁이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도 있고, 그래도 조금 철이 들어서 사귄 중고등학교 친구가 가장 오래가는 진정한 친구라는 주장도 있지만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어린 시절 헤어지기 싫어서 하교 시간에 귀가하지 않고 날이 어둑하도록 함께 어울렸던 친구도 지금은 소식이 끊겨 어디서 무얼 하고 사는지도 알지 못하고, 대학에 가서도 변함없이 자주 만나 우정을 나누자는 중고교 벗들도 캠퍼스가 갈리면서 만남의 횟수가 줄어들자 결국 데면데면하게 되었다. 이성 간의 간절한 사랑이 아닌, 단순한 친구 사이에서는 물리적 거리로 인해 우정이 시들해지는 경우가 빈번한 것 같다. 몸으로 부대끼며 감정교류를 하지 않으면 결국 마음도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리적 거리로 인해 마음이 멀어지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간혹 이것이 기억을 왜곡시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자신을 미화시키거나 돋보이게 하느라 과거를 잘못 소환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 것이다. 관련된 사람들이 서로 만나 그 진위를 확인할 기회가 없으니 자신만의 희미한 기억을 적당히 엮어서 아름답게 재생시킨 결과다. 그리고 그것을 사실인 양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확실한 사실로 자리 잡는다. 명백한 반증이 없는 한 그게 자신만의 팩트가 되는 것이다. 확증편향 비슷한 것 말이다.

아주 가까이 지냈던 친구가 있다. 고교 때 같은 반이었고 대학도 같이 다녔으며 군대에서 제대한 후 한 학기를 또 같이 다녔으니 당연히 친할 수밖에 없다. 지난 주 그를 9년 만에 장례식장에서 만났다. 친한 벗을 이렇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것은 참 의외다. 취업 직후에도 직장이 가까워서 자주 만났었는데 어느 날 그가 전주로 거처를 옮기면서 긴 시간 연락이 끊겼다. 다행히 SNS로 다시 연결되어 간간이 문자를 교환하기도 했지만 이전만은 못했다. 바쁘기도 했고, 각자 새로운 지인이 생기면서 둘만의 공감대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과거 오랜 시간을 함께해서인지 긴 공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추억 한자락을 붙들고도 꽤 많은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추억을 소환했더니 이내 잠자고 있던 과거사들이 하나씩 살아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대화 중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필자가 그 친구 관련하여 주위에 자주 이야기하던 에피소드 몇몇이 전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너무나 명백하다고 생각한 사실, 즉 그의 권유로 취업원서를 함께 냈는데 정작 그는 떨어지고 필자만 합격했다는 세렌디피티(serendipity)의 기억이 완전히 헝클어져 버렸다. 상대의 검증을 거치지 않는 혼자만의 기억이 낳은 대오류다.

그렇다면 필자를 현 직장으로 이끌었던 친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이제 왜곡이나 조작된 기억이 아닌, 온전히 사실에 근거해서 그 주인공을 다시 찾아 나서야 할 것 같다. 눈에서 멀어져 잊혀가는 것도 슬픈 일이지만 잘못된 기억으로 오래 남는 것은 더 안타까울 테니까. /이강만 한화에스테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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