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지난 15일은 제76주년 광복절이었다. 그런데 혹자는 독립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해방이라고 했다. 광복이라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많지 않았고 해방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았다. 8월 15일, 같은 날에 대해 이렇게 독립, 해방, 광복이라는 말을 다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유사 이래 우리의 모든 역사가 예속의 역사가 되고 만다. 그래서 노태우 정부 때 천안에 ‘독립기념관’을 지을 때에도 큰 논란이 있었다. 우리의 국권을 우리 스스로 행사하기 위해 싸운 선열들을 ‘독립투사’라고 부르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8월 15일을 독립기념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는 본래부터 독립국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독립국인 우리의 주권을 일제가 강탈했으므로 독립투사들은 그것을 되찾기 위해 피 흘려 싸워 마침내 주권을 회복했다. 이 ‘회복’을 마치 우리의 역사상 처음으로 독립을 얻은 것으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문대사전》은 한국의 ‘한’에 대해 “1897년에 중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국호를 ‘한국’이라고 고쳤다. 일본에 병탄되었다가 2차 세계대전 후에 독립하였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우리 역사 전체를 중국의 속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런 판국에 우리 스스로 독립이라는 말을 사용하여 유사 이래 처음으로 독립을 맞은 민족을 자처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해방(解放)이라는 말은 더더욱 사용해서는 안 된다. ‘풀어줄 해’와 ‘놓을 방’을 쓰는 해방은 타동사이므로 ‘링컨이 노예를 해방하다’처럼 목적어를 갖는데 바로 우리가 목적어가 되어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풀어 놓아 줌’의 은혜를 받은 꼴이 되고 만다. 독립투사들의 노력도 허사가 되고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도 의미를 잃는다. 게다가 미군은 남한에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으로 들어와 3년 동안 미국 군정을 실시했다. 북한이 소련의 군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내걸고 김일성이 실권을 행사한 것과 많이 다르다. 중국이 사용하는 해방은 중국 공산당이 봉건지주의 착취로부터 인민을 해방했다는 의미이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고 우리는 당연히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빛 광’과 ‘회복할 복’을 쓰는 광복(光復)은 ‘빛을 회복함’이라는 뜻이다. 한 국가가 일시적으로 나쁜 일을 당하여 체면을 손상당하고 실색했다가 사태가 호전되어 실색했던 빛을 회복함으로써 본래의 제 빛을 찾는 것이 ‘광복’이다. 중국 진(晉)나라의 장수 환온(桓溫)이 올린 상소를 보고 황제가 “옛 수도를 광복하고자 하는 뜻을 알겠다.”라고 답한 데에서 광복이라는 말이 처음 쓰였다.
우리는 1945년 8월 15일에 처음 독립한 것도 아니고, 일제나 미국이 해방을 해준 것은 더욱 아니다. 우리 스스로 노력하여 국권을 되찾아 나라의 빛을 회복하는 ‘광복’을 하였다. 광복을 위해 임시정부는 광복군을 조직하여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였다.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그런 법통을 이었기 때문에 광복절이라는 이름으로 국경일을 제정하였다. 더 이상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왜곡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는 ‘독립’이나 ‘해방’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역사적 사실 그대로를 반영하고 우리의 정당한 투쟁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우리의 국격을 세울 수 있는 용어인 ‘광복’이라는 말을 사용해야 한다. /김병기(전북대 명예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