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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길을 사랑한 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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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환 길종합건축사사무소ENG 대표

가벼운 운동복에 물 한 병 들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봄바람과 함께 달리니 코에 봄기운이 가득해진다. 건물을 벗어나 천변을 따라 내려가니 화려한 봄꽃과 우아한 몸짓의 새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한 무리의 까치가 오가는 사람들 사이로 유유히 걸어 다니고 통통해진 오리들도 사람을 피해 도망가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물속에도 물고기가 있는지 수중발레 선수처럼 두 다리만 물 밖으로 내놓고 머리는 바닥을 탐색하고 있다. 오리 구경도 하면서 봄에 취해 한참 달리다 보면 내가 목표했던 반환점을 지나쳐 돌아올 때는 온몸이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요즘 도시는 자전거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인도와 자전거길이 구분되어 있고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로 주말에는 제법 북적거린다. 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가면 주변의 풍경들에 눈이 즐겁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바로 옆 높은 빌딩을 가로지르는 자동차들 사이로 자전거 길을 벗어나면 오래된 단독주택들이 보인다. 좁고 오래된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가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마치 예쁜 수채화 그림을 보는 듯하다. 그 작은 공간이 주는 친근함과 포근함에 길을 걷다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도시에 살면서 고개를 들어 편안하게 하늘을 보는 게 몇 번이나 될까. 사무실에서 컴퓨터나 문서 더미에 쌓여 있다가 낡은 골목길에서 만난 사소한 만남이 지친 몸과 마음을 해방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이 만든 구조물과 다양한 형태의 공간에서 그에 맞춰 적응하며 살아간다. 정보기술의 변화 속도가 워낙 빠르고 역동적이라 질 좋은 장소로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도시 간의 격차, 도시 내의 격차도 점점 커진다. 가상공간은 처음에는 현실 공간과 정반대로 구상되었지만, 점차 현실 공간과 비슷해지고 있고 온라인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기도 하지만 새로운 고립과 불평등도 만들어 낸다. 현실과 가상이 혼재하는 정보화 시대에 기술과 정보는 풍성하지만 건조한 기술의 세계에 갇히지 않도록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을 조율해야 한다.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현재를 분석하고 진단한다면 건축가는 공간을 통해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변화하는 건축의 중심에 서서 도시 진화의 기반을 마련하며 정보 교류의 장으로서 관련 조직 간 화합을 유도해야 한다. 옛것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방향과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재해석하여 창조하는 방향이 공존해야 한다. 삶과 건축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이고 건축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이며 우리 삶의 본질적 요소이기도 하다. 오늘날 경쟁과 자본사회의 집적공간인 도시에서 생존을 위한 요소들은 저절로 제공되지 않는다. 도시를 이루는 다양한 요소 중 시민의 삶을 담는 건축은 중요한 물리적 환경이며 새롭게 변화하는 건축을 통해 도시는 더 나은 환경으로 진화 할 수 있다. 길과 광장을 예찬한 많은 역사학자와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무미건조한 산업도시를 비판한다. 도시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새로운 변화 요구에 부응하는 건축가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도시는 변형을 거듭했지만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여전히 남아 있다. 걷는 수고를 받아들이고 얻은 뿌듯함과 돌아서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세월의 흔적 하나하나가 정겹고 사랑스럽다. 등줄기로 흐르는 땀을 식히기 위해 길모퉁이 그늘에 앉아 나른한 피로와 함께 도시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길환 길종합건축사사무소ENG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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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축가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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